아르카디 볼로도스(38)
‘천재’ 통념 깨뜨린 볼로도스 내한
그는 천재 연주가들의 상식을 깨는 피아니스트이다. 일찍부터 주목받은 신동도 아니었다. 늦은 나이인 15살에 피아노에 입문했고 이렇다 할 국제콩쿠르의 이력도 없다. 그러나 그가 25살 되던 97년 첫 데뷔 앨범을 내자 평단은 그를 ‘제2의 호로비츠’라며 흥분했다.
예프게니 키신(39)과 더불어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보를 잇고 있는 피아니스트 아르카디 볼로도스(38)가 드디어 한국 관객과 처음 만난다.
오는 27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연주회를 여는 그는 국내에서는 소수의 마니아에게만 알려졌지만 세계무대에서는 기교와 힘, 열정과 냉정, 지성과 감성을 함께 갖춘 피아노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그가 97년 내놓자마자 “호로비츠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받은 데뷔 음반 <피아노 트랜스크립션>을 비롯해 <라이브 앳 카네기홀>(99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2000년), <슈베르트 피아노독주 모음곡>(2002년),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플레이스 리스트>(2007년) 등 주로 라이브 연주를 녹음한 앨범들은 그에게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선정, 독일비평음반가상, 그라모폰 어워드, 독일 에코 클래식, 디아파종 도르 등을 수상했다.
1972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성악가 출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성악과 지휘를 공부했다. 그러다 그의 나이 15살인 1987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연주음반을 듣고 감동한 뒤 전공을 바꿔 모스크바음악원과 파리음악원, 소피아음악원 등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95년 그가 23살에 파리에서 가진 연주가 우연히 소니클래식 음반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이듬해 뉴욕 데뷔 리사이틀이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연주자로 떠올랐다. 그 뒤로 그는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벨레리 게르기예프, 주빈 메타, 로린 마젤, 정명훈, 세이지 오자와 등 세계적인 지휘자, 베를린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등 정상급 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추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는 전설적인 피아노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것에 대해 “첫 번째 앨범에서 몇몇 연주자들의 편곡 작품을 연주했는데 거기에 호로비츠가 편곡한 곡들도 섞여 있어서 늘 그렇게 소개하는 것 같다”고 이메일로 전해왔다.
“피아노의 영역을 확장시킨 호로비츠의 예술은 항상 존경하지만 한다. 그 외에도 편곡 작품을 많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코르토, 파인버그나 소프로니츠키, 기제킹, 슈나벨 등도 역시 좋아하는 예술가들이다. 그들이 음악 속에 옮겨놓는 저마다의 마력과 본능적인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그는 성악과 지휘를 공부했던 이력답게 기존에 들어왔던 피아노 작품을 뛰어넘는 레퍼토리를 선보이곤 한다. 과거 호로비츠가 그랬듯이 선배 피아니스트들이 편곡한 작품을 연주하는가 하면 성악곡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이 직접 편곡한 작품으로 앨범을 꾸민다.
그에게 “작곡가의 의도와 전통적인 해석, 그리고 자신만의 해석에 대해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움과 그 연주에 있어서의 즉흥적인 요소들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없으면 연주는 마치 박물관에 있는 어떤 물건 같이 생명력이 없는 물건처럼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일생이 걸릴 수 있는 긴 과정이며, 시간과 함께 깊이를 더해가고, 또 살아온 인생 여정과 함께 더 풍요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앨범을 낼 때 스튜디오 녹음보다는 실황 녹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이크가 연주하는 공간에 있으면 음악에 집중하는 것이 방해가 되고 청중과 소통하는 데에도 방해가 된다”는 게 그 이유다.
“청중 앞에서 연주한다는 것과 혼자 스튜디오에서 갇혀서 치는 것은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실황을 녹음하는 게 훨씬 좋다. 연주에 대한 책임감을 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실황 녹음은 하루 저녁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고, 인생의 한순간에 대한 녹음이다. 거기에는 청중이 있고, 청중이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교감을 가져다준다. 홀 전체에 전기가 통하는 그런 교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나에게 굉장한 영감을 준다.”
성남아트센터의 개관 5주년을 기념하는 기획공연의 첫 무대로 꾸며지는 내한무대에서 그는 스크랴빈의 <프렐류드> 1번과 16번, 소나타 7번, 슈만의 <유머레스크>, 스페인의 현대작곡가 몸포우의 <어린이 정경>, 이작 알베니즈의 <알함브라 모음곡> 중 1번 ‘라 베가’, 리스트의 <순례의 해 2년: 이탈리아> 중 제7곡 ‘단테를 읽고’(단테 소나타) 등을 들려준다.
그의 내한에 맞춰 지난해 3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렸던 독주회 실황을 담은 앨범 <볼로도스 인 비엔나> 시디와 디비디, 2002년 세이지 오자와 지휘의 베를린 필과 협연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실황,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품 등이 수록된 앨범이 최근 소니클래식에서 나왔다. (031)783-800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성남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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