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현화음 앨범 ‘잔상’
이색 현화음 앨범 ‘잔상’
정민아 가야금에 서영도 베이스 연주 곁들여
“14분 즉흥 연주, 영감부른 운명적 만남이었죠”
정민아 가야금에 서영도 베이스 연주 곁들여
“14분 즉흥 연주, 영감부른 운명적 만남이었죠”
처음부터 그럴 작정은 아니었다. 가야금양은 베이스군을 딱 한 번만 만나고 말 요량이었다. 베이스군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만남이 모든 걸 바꿔버렸다. 가야금양은 베이스군에게 다시 전화를 했고, 베이스군도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 만남을 이어나간 둘은 마침내 예쁜 작품 하나를 빚어냈다. 둘의 숨결과 손길이 황금비율로 오롯이 담긴.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의 고민이 깊어졌다. 3년 전 창작보컬곡, 재즈, 탱고, 민요편곡 등 다채로운 빛깔을 버무려 발표한 퓨전국악 데뷔 앨범 <상사몽>으로 놀랍게도 1만장 가까운 판매량을 올린 그다. 연주자로선 드물게 직접 작·편곡을 하는데다, 서울 홍대 앞 클럽에서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하는 가수로 자기만의 색깔을 쌓아올렸다. 1집에서 성공한 음악인은 갈림길을 만나기 마련이다. 이전 스타일을 이어나갈 것인가, 다른 스타일로 변신할 것인가? 고민 끝에 그는 가야금과 베이스의 협연을 생각해냈다. 이를 위한 곡을 하나 만들고는 녹음을 함께 할 최고의 베이스 연주자를 수소문했다. 베이스 연주자 서영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녹음실에 도착했다. 늘상 해오던 세션 연주처럼 요구에 맞춰 연주하면 될 일이었다. ‘잔상’이라는 곡이었는데, 30분 만에 뚝딱 녹음을 해치웠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났다. “그냥 가기 뭐한데 다른 곡도 한번 해볼까요?” 그는 정민아에게 즉흥연주를 제안했다. 악보 하나 없이 시작한 가야금과 베이스의 앙상블이 14분여에 걸쳐 넘실댔다. “건투를 빈다”는 말을 남기고 녹음실을 나선 서영도는 ‘언젠가 이런 식의 작업을 제대로 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녹음한 결과물을 들어본 정민아는 놀랐다. 가야금 현과 베이스 현이 직조해낸 즉흥 연주의 느낌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애초 ‘잔상’ 한 곡만 듀오로 하려던 계획을 바꿔 더 많은 곡을 협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서영도에게 연락했더니 흔쾌히 응했다. 가야금 솔로곡으로 만든 ‘기억의 행성’을 듀오곡으로 바꿔 연주하고, 민요 ‘새야 새야’와 영화 <시네마 천국> 주제곡을 둘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해 풀어냈다. 이렇게 완성한 앨범이 정민아 2집 <잔상>이다. 지난번의 14분여간 즉흥 연주는 그날 날짜를 딴 ‘즉흥, 2009년 11월30일’이라는 제목으로 앨범에 담았다. 역시 그날 이뤄진 또다른 즉흥 연주에서 베이스 부분만 따낸 뒤 그 위에 가야금 연주를 덧입혀 재창조해낸 곡 ‘거울 속의 꽃, 물속의 달’도 넣었다. <잔상>은 겉으로는 가야금 연주 앨범이지만, 사실상 가야금과 베이스를 투톱으로 내세운 듀오 앨범에 가깝다. 즉흥적으로 이뤄진 한순간의 교감이 앨범 전체의 색깔을 바꿔버린 것이다. “건물은 공사 도중 허물고 다시 지을 수 없는 법이잖아요. 영화나 뮤지컬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음악은 달라요. 설계부터 제작까지 한창 진행됐어도 중간에 얼마든지 뒤집고 새로 시작할 수 있거든요. 이게 바로 음악의 매력이죠.”(서영도) 정민아는 몇달 뒤 또 앨범을 낼 예정이다. 애초 2집에 담으려 했던 곡들을 모은 ‘두번째 2집’이다. 1집처럼 직접 노래한 보컬곡과 가야금 소품 위주의 앨범이 될 것 같다고 귀띔한다. 앞서 둘은 20일 홍대 앞 카페 벨로주에서 손과 호흡을 맞추며 ‘운명적 만남’의 짙은 여운을 다른 이들과도 나눌 계획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소니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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