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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맺힌 사연 닮은 그들함께 만든 ‘슬픈 노래’

등록 2010-03-03 17:53수정 2010-03-03 19:18

왼쪽부터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2), 피아니스트 크리스퍼 박(23).
왼쪽부터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2), 피아니스트 크리스퍼 박(23).
용재 오닐-크리스토퍼 박 협연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가슴의 슬픔을 알아줍니다./ 홀로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을 등지고/ 멀리 하늘을 바라봅니다./ 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지금 먼 곳에 있습니다./ 눈은 어지럽고 가슴은 찢어집니다./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가슴의 슬픔을 알아줍니다.”-그리움을 아는 자만이(괴테 시·차이콥스키 곡)

두 청년의 가슴에 맺힌 한이 얼마나 사무쳤기에 저토록 슬픈 노래일까?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2)이 다섯번째 솔로앨범 <노래-슬픈 노래>를 내놓았다. 그동안 <눈물>, <겨울 나그네>, <미스테리오소> 등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앨범을 발표했던 그가 한국계 독일 피아니스트 크리스퍼 박(23)과 만나 지난해 9월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함께 만든 작업이다. 차이코프스키의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를 비롯해 구아스타비노의 ‘장미와 버드나무’, 히나스테라의 ‘슬픈 노래’,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 브람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등 애수와 감성 어린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용재 오닐은 한국전쟁의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지적 장애인 여성의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크리스토퍼 박은 청소년 시절 한국인 아버지와 생이별을 한 슬픈 사연을 안고 있다. 오는 5~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7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노래> 발매기념 연주회를 앞둔 두 사람을 지난 주말 만났다. 그들은 앨범 작업을 하면서 반쪽 한국인이라는 동병상련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용재 오닐은 “크리스토퍼와 연주하게 돼 기쁘고 자랑스럽다”며 “녹음하면서 그와 음악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이번 음반을 들으면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음반 작업을 하다 보면 함께 연주할 사람과 마음 맞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과 다투지 않으려고 제가 양보하는 편인데 크리스토퍼는 반대로 먼저 양보해줘서 연주에 여지를 많이 줍니다. 정말 특별한 연주자입니다.”

그는 “크리스토퍼가 음악을 향한 공감대가 저와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자 크리스토퍼 박도 “용재 오닐과 함께 녹음 작업을 하게 돼 큰 영광”이라며 “특히 올해는 용재 오닐과 공연을 하고, 또 제가 다른 고향인 한국에서 활동하게 돼 특별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재 오닐이 한국에서 여러 장의 음반을 발매해 큰 인기를 끈 비올리스트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두렵기도 했는데 만나서 며칠 같이 지내다 보니 정말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가 독일어를 잘 못하는데도 막상 브람스의 곡을 연주할 때는 마치 독일어로 이야기하듯이 연주했습니다. 진귀하고 멋진 경험이었어요.”

용재 오닐이 세계적인 실내악 연주단체인 ‘세종솔로이스츠’와 ‘앙상블 디토’ 활동으로 한국에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에 견주어 크리스토퍼 박은 이번 연주회가 첫 한국 데뷔인 만큼 뜻깊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지금껏 거기서 살고 있지만, 그곳이 진정한 고향이라는 느낌을 별로 갖지 못했는데 한국에 오니까 마치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 박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대에서 러시아의 거장 레프 오보린의 제자로 러시아의 피아니즘을 잇는 레프 나토체니를 사사했다. 독일 유겐트 뮤지지에르트 국제콩쿠르와 미국 뉴욕국제마리스마트 콩쿠르 등에서 우승했으며 독일음악협회, 아르테무지카, 에후디 메뉴힌의 장학금을 받았다. 특히 그는 지난해 11월 유니버설뮤직과 전속계약을 맺고 첫번째 솔로 앨범 <러시안 트랜스크립션>(러시아 편곡) 녹음작업을 마치고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스트라빈스키, 카푸스틴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으로 꾸민 이 음반은 오랫동안 도이치크라모폰에서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함께 녹음작업을 해온 명 프로듀서 크리스토퍼 알더가 참여해 세계 클라식계에 커다란 화제를 모았다.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의 거장 리히테르를 존경하며 피아노를 연습했습니다. 여섯 일곱 살 무렵에 아버지가 제 연주를 녹음해서 한국의 할아버지한테 ‘손자가 특별한 아이인 것 같다’는 편지와 함께 보냈다고 하더군요. 제가 열일곱살 되던 해에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 없이 한국으로 떠난 뒤로 소식을 끊었습니다.아버지가 왜 저와 어머니를 버렸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제 연주회에 그분과 할아버지께서 꼭 오셨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의 음반과 서울과 고양 연주회에 들려줄 음악은 모두 가사가 있는 곡들이다.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역의 민요부터 브람스와 멘델스존,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담았다.

용재 오닐은 “연주자로서 가사가 전혀 없는 곡을 연주하는 것도 기쁘지만 가사가 있는 음악은 가사의 자음과 모음이 주는 힌트에 따라 연주하는 묘미가 굉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을 이해하고 악기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뛰어난 연주자가 필요한데 크리스토퍼와의 만남은 정말 큰 기쁨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독일어가 모국어인 크리스토퍼의 도움으로 노래 가사의 의미를 연구해가며 비올라로 노래하듯이 표현해내려고 애썼다”며 가장 아끼는 곡으로 브람스의 후기 가곡 ‘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꼽았다.

“브람스가 사모했던 클라라가 말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을 예감하며 쓴 곡이라더군요.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의 제목인 ‘슬픈 노래’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토퍼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지난해 뉴욕 링컨센터의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정식단원으로 임명된 용재 오닐은 올해도 카메라타 퍼시피카 연주회, 런던필하모닉과의 협연, 디토의 일본 연주회 등 빡빡한 일정이 잡혀있다. 크리스토퍼 박도 오는 5월7일 호암아트홀에서 첫번째 단독 리사이틀을 가질 예정이다. 올해 절반의 한국 청년들의 아름다운 활동이 기대된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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