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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방송이 외면한 음악…팬들이 저지른 공연

등록 2010-03-10 14:18수정 2010-03-10 14:20

팬들이 직접 기획하는 공연 ‘락(樂)콘서트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준비모임 회원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민숙·이한준·전희전·주수민·권은혜씨.
팬들이 직접 기획하는 공연 ‘락(樂)콘서트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준비모임 회원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민숙·이한준·전희전·주수민·권은혜씨.
‘락 콘서트 베스트…’를 만드는 사람들
관객으로 만나 의기투합 “인디음악 꿈의 무대 만들자”
주머니 털어 직접 기획·홍보…실력파 밴드들 ‘한자리’
포스터를 본 건 서울 홍대 앞 어느 클럽 화장실에서였다. 이름하여 ‘락(樂)콘서트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국카스텐, 아폴로18, 한음파, 허클베리핀, 황보령=스맥소프트 등 다섯 밴드가 12일 저녁 7시 홍대 앞 상상마당 라이브홀에 선단다. 이 정도면 드림팀이다. 지금 이 바닥에서 가장 잘나가고 무게감 있는 록 밴드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으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주최가 어디인지 살펴보니,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준비모임? 이럴 수가! 팬들이다. 포스터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난 3일 저녁 상상마당 6층 카페에서 마주친 이는 앳된 얼굴의 주수민(19)씨. 이제 갓 대학생이 됐다. 곧이어 모임지기 전희전(42)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리랜서 수학 강사다. 출판 편집자 정민숙(33)씨와 편집 디자이너 권은혜(29)씨가 도착했고, 마지막으로 이한준(20)씨가 합류했다. 학생이면서 부업으로 ‘텐’이라는 인디 밴드 매니저 일도 한다고 했다. 다양한 연령에 다양한 직업, 다국적군이 따로 없다. 다섯 밴드의 팬 클럽에서 고루 모였다.

출발은 지난해 12월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보령=스맥소프트의 클럽 공연이 끝난 뒤 몇몇 관객이 자연스레 의기투합해 호프집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 전씨와 이씨가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밴드들을 모아 직접 공연을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재밌겠는데요.” 맥주잔을 앞에 놓고 가볍게 나눈 말이었다. 다음날 전씨가 몇몇 밴드에게 가능성을 타진했다. 희망적인 답변을 얻었다. 홍대 앞에서 가장 넓고 시설이 좋은 상상마당 라이브홀에 전화를 했다. 3월12일 딱 하루 비어있었다. 자비로 계약금 66만원을 내고 덜컥 계약해버렸다. “저지르고 나니 괜히 돈만 날리는 건 아닌지 걱정되더라고요.”

전씨는 각 밴드의 팬클럽에 도움을 청했다. 자원자 10명으로 준비 모임을 꾸렸다. 모이고 보니 숨어 있던 능력자가 속속 나타났다. 디자이너인 권씨는 포스터와 전단을 직접 만들었고, 매니저 경험이 있는 이씨는 스케줄 조정과 홍보를 맡았다. 주씨는 온·오프라인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공연을 알렸고, 정씨는 회의 때마다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전씨는 캠코더를 들고 밴드를 찾아다니며 인터뷰 영상을 찍었다.

방송이 외면한 음악…팬들이 저지른 공연
방송이 외면한 음악…팬들이 저지른 공연

모든 사안은 합의를 거쳤다. 표값(예매 2만원·현매 2만5000원)도 투표로 정했다. 가장 첨예했던 건 공연 순서. 언제 무대에 오르느냐에 따라 객석 분위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밴드 팬들이 고루 있던 터라 쉽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고심 끝에 택한 해결책은 제비뽑기.

밴드 멤버들이 직접 와서 제비를 뽑았는데, 이를 담은 동영상을 홍보용으로 누리집(bestofthebest.pe.kr)에 올리는 부수적 효과도 톡톡히 거뒀다.

하느라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돈, 시간, 경험 어느 하나 아쉽지 않은 게 없었고, 예매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공연이 닷새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400명 이상 들어가는 공연장에 160명만 예매했다. “개런티 없이 참여하는 밴드들에게 공연에서 남는 돈 전액을 나눠줄 작정인데, 수익은커녕 공연장이 썰렁해서 밴드들에게 면목 없을까봐 더 걱정이네요.” 모든 비용을 자비로 대고 있는 전씨의 입이 바짝 타들어갔다.

“이토록 진지하고 뜨거운 음악을 방송은 거의 틀어주지 않아요.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무리를 해서라도 공연을 추진합니다. 많이들 와서 보고 느낀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전희전)

“대중음악이라 해서 남들이 소비하는 것만 따라서 소비할 필요 없잖아요. 다들 주관과 개성을 갖고 자신만의 음악을 찾아 즐겼으면 좋겠어요.”(주수민)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를 나서는데, 주씨가 다시 들어가더니 카운터에 공연 전단을 꽂고 나왔다. “이야~ 프로 다 됐네.” 웃음꽃이 터졌다. 1544-1555.

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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