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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외로운 가수가 아닌 의로운 가수가 돼라

등록 2010-03-17 11:25수정 2010-03-17 13:40

지드래곤
지드래곤
표절 시비에 ‘표류’하는 지드래곤
냄새나 그림자 의혹에 쿨하게 소통했으면…
■ 한겨레 대중음악 웹진<100비트> 바로가기
2009년도 말 ‘올해의 앨범’을 고르다 어느 앨범 앞에서 시선이 멈췄다. 뽑고 싶지만 뽑았다간 대박 욕먹을 만한 앨범이다. 표드래곤 표차르트 같은 불편한 별칭을 감수해야 했던 올해의 문제작 이야기다.

지디는 빅뱅 내 개인역량이 단연 돋보이는 멤버라 여겼고 그룹 내 또다른 멤버 태양과 승리의 솔로 활동도 딱히 흠잡을 곳이 없어 지디 솔로 데뷔 기대치는 당연히 높았다. 그랬다가 ‘Heartbreaker’를 듣고 조금은 맥이 빠졌다. 표절 의혹은 차치하고, 진짜 날것의 자신을 공개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자 두려움이 엄습한 모양인지 장비와 기계에 자신을 숨기듯 사정없이 오토튠으로 발라놓은 노래로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누군가의 사적인 기록을 발견하게 되고 나는 입장을 수정하게 된다.

좋은 음악 고민했을지언정 다른 음악 공부는 별로…  

지드래곤의 ‘하트 브레이커’와 표절 시비가 일었던 ‘라이트 라운드’.
지드래곤의 ‘하트 브레이커’와 표절 시비가 일었던 ‘라이트 라운드’.
“G드래곤 음악 좋다. 제법 짜릿한 순간을 건네주기도 한다. 하지만 짜증난다. 이게 소위 음악을 좀 듣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혹은 업자이기에 갖는 짜증이어야만 하나 싶어 더 짜증난다(핫트랙스에서 품절이라는 마크가 붙어있는 걸 본 게 몇년만인지 모르겠다). 충분히 즐길 만한 음악을 만들어 놓고 왜 그걸 마음놓고 즐기지 못하게 만드나(박정용).”


그의 깊고 뼈아픈 허탈이 앨범을 궁금하게 만들어 들어봤더니 나도 그처럼 가슴이 허해질 만큼 좋았다. 힙합과 일렉트로니카가 만나거나 섞일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 꽤 많이 연구하고 고민한 앨범이었고 숙고 끝에 완성된 음악의 수준은 상당했다. 앨범 안에서 녹여 듣다보니 ‘Heartbreaker’는 첫인상과 달리 꽤 매끈하게 빠진 노래였고, 씨엘, 태양, 테디야 식구니까 그렇다 쳐도 김건모와 나눈 호흡도 거의 윈윈 수준으로 무척 자연스러웠고, 강렬하고 세련된 비트 덕에 운동할 때 들어도 좋고 드라이브 할 때 들어도 좋고 좌우간 상황 안가리고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만든 탄탄한 앨범인 건 확실했다.

그러나 박 선배의 말대로 좋고 짜릿한 앨범이었기 때문에 나도 그처럼 공허해졌다. 이렇게 잘 만든 앨범을 나는 올해의 앨범으로 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디측 제작팀은 좋은 음악을 고민했을지언정 다른 음악 공부를 별로 안했다. 사실 공부랄 것도 없다. 알려진 대로 ‘Heartbreaker’의 플로 일부에선 어느 빌보드 1위곡의 스멜이 느껴지고 ‘Breathe’에선 어쩐지 카일리 미노그가 떠오르고 ‘Butterfly’는 한 성깔하는 어느 형제밴드의 멜로디와 싱크가 일치하고 있다. 추가 제보에 의하면 ‘The Leaders’에는 스눕 독의 희미한 그림자가 있다. 이렇듯 논란이 지목하고 있었던 원곡은 먼 거리에 있는 음악이 전혀 아니다.

“내 팬인 당신들은 내 말만 믿으라”고 했다는데… 

‘오 마이 프렌드’ 뮤직비디오 속 지드래곤.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오 마이 프렌드’ 뮤직비디오 속 지드래곤.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웰메이드 앨범에 대한 과도한 자기확신 때문인지 우리가 알 길 없는 내부사정 탓인지 좌우간 지디는 허탈해하는 이들한테 아무런 해명을 안했다. 지디 소속기업의 대표가 우리를 허탈하게 만든 의혹에 관해서 공식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후련한 구석은 별로 없었던 공문인 게 사실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양 사장이 대리작성한 장문의 가정통신문이 아니다. 컨텐츠 생산 차원에서 기존 아이돌과의 차별화에 주력했던 빅뱅의 리더, 자기 음악에 대한 의욕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노출했고 홀로 섰을 때 무대 장악력이 누구보다도 높을 거라 세상이 예상했을 지디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지디는 입을 안 열었고 그 어떤 노래보다도 멜로디 일치가 확실했던 ‘Butterfly’의 뮤직비디오를 떳떳하게 혹은 장렬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활동을 마감했다. 그렇게 지디가 의미있는 지적에서부터 언어를 고를 여유가 없는 어떤 잉여들을 외면하는 동안, 방어막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팬덤 사이에서는 문익점 쉴드라는 허술한 매뉴얼이 등장하기도 했다. 문익점이 해외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처럼 우리의 지디도…. 손발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차마 끝까지 쓰지를 못하겠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지디는 최근 단독 콘서트에서 “내 팬인 당신들은 다른 사람들 말은 믿지 말고 내 말만 믿으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했다 한다. 이렇듯 팬과만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세상의 이야기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 혹은 귀 기울였으되 기울인 티를 별로 내지 않는 지디에게 나는 그만 주제 넘게도 뒤늦게 입장표명을 코치하고 싶어진다. 죄송하다 잘못했다 이딴 말은 지디 캐릭터에 별로 어울리지 않으니까 진심없는 사과는 생략하기로 하자. 낡고 닳은 반성문 형식을 빌리지 않아도, 쿨하고 간단하게 사실만 인정해도 지디(와 테디)라면 충분히 통할지 모른다. 의도하지 않았다, 단지 잘 몰랐을 뿐이다, 아직 그릇이 작아 좋아하고 즐기는 음악만 듣고 작업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 많은 질책은 쓰리고 아팠지만 이것은 내가 도약하게 되는 유의미한 진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자존심 너머의 진심과 인정 보고 싶어 

세상의 질문과 의혹에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갔다면, 그리고 자기 노래에 애정에 준하는 책임을 동반하고 조금만 더 진실하고 성숙하게 말하는 용기를 탑재했다면 지디는 인간적인 아이돌이 그 어느 때보다 각광받는 작금에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다시 부상했을지 모른다. 덤으로, 잊을 만할 때쯤이면 빵빵 터지지만 시원하게 해결된 사례가 거의 없는 표절 문제에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구체적인 대처 방안이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수정! 이런 건 안 이루어진다. 절대로 안 이루어진다. 씨엔블루가 그걸 말했다 -_-).

지디만큼 바쁘진 않지만 나도 엄연히 할 일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올해의 앨범을 꼽다 멈추고 시의성 완전 떨어지는 지디의 공문 초안을 쓰고 있다. 할 일 없어서가 아니라 이건 ‘지긋지긋’한 일이기 이전에 그야말로 ‘삐끗삐끗’한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명분으로. 지디는 대망의 단독 콘서트를 앞두고 침대를 동원한 전위적이고 섹슈얼한 퍼포먼스부터 구상하는 무대의 주인공이기 전에 먼저 당면한 민감한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가수, 외로운 가수가 아니라 의로운 가수이기를 권하고 싶어진다. 진짜 잘 들었어도 진짜 잘 들었다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나는 이제 지디로부터 자존심 너머의 진심과 인정을 보고 싶어진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그동안 보여줬던 그 어떤 무대보다 강렬할지 모른다.

이민희/음악평론가

◈ 이민희= 쓰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한다. 슬픈 노래보다 시끄럽고 요란한 사운드에 더 쉽게 이끌린다. 오디오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TV 앞에서 버리는 시간이 더 많다. CD를 사는 것보다는 공연을 더 즐긴다. 팝과 록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음악보다 록커의 사생활에 더 관심이 많고, 록커보다는 아이돌 대소사에 더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운다. 글로든 말로든 또래 친구와 수다떠는 느낌으로 음악을 나누고 싶어한다.

■ 한겨레 대중음악 웹진 <100비트> 바로가기

한겨레 음악웹진 <100비트> 맛 보세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른 시각으로 ‘변주’
트위터와 미투데이에서도 귀 열어두세요
 

<한겨레>와 박은석, 김작가, 김현준 등 20여명의 젊은 대중음악평론가들이 함께 만드는 대중음악 웹진 <100비트>(www.100beat.com)가 17일 시험판(베타 서비스) 문을 열었다.

‘모든 음악 다른 시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살아있는 진짜 음악이라면 주류·비주류, 국내·국외를 가리지 않고 두루 소개할 예정이다. 새로 나온 앨범 리뷰뿐 아니라 재미와 깊이를 갖춘 월간 기획, 음악인 인터뷰, 에세이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낸다. 날마다 새로운 콘텐츠를 업데이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험판 <100비트>에는 음악평론가 이민희씨가 쓴 피처 ‘지드래곤을 올해의 앨범으로 뽑으려다 만 이유’, 소녀시대 <오!>와 카라 <루팡> 리뷰, 미국 팝 밴드 오케이 고(OK GO)와 헤비메탈 밴드 건스 앤 로지스의 리더 액슬 로즈 인터뷰, 지난 1월 내한공연을 한 펑크 록 밴드 그린데이의 프로파일, 브리트니 스피어스와의 인터뷰 후일담 등이 실려 있다.

웹진 이름인 ‘100비트’는 록 음악에 많이 쓰이는 박자를 뜻하는 음악 용어이자 비틀스의 무명 시절을 다룬 영화 제목 를 변형한 것이다. 숫자 ‘100’으로 상징되는 다양한 음악과 다양한 시각을 아우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100비트>의 로고는 음악을 상징하는 시디(CD)와 평론을 상징하는 펜을 함께 형상화한 것이다. 또 턴테이블에 걸린 엘피(LP)와 바늘을 상징하기도 한다. 단 한 곡을 듣더라도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하는 턴테이블은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리스너들을 떠올리게 한다.

<100비트>는 2주일 동안의 시험판 기간을 거쳐 오는 31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이날에 맞춰 <한겨레>는 전날인 30일 열리는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관련 별지를 발간해 신문과 함께 배달한다. <100비트>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인 트위터와 미투데이를 통해서도 누리꾼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두 서비스 모두 아이디는 ‘100beat’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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