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스피어스를 둘러싼 모험, 후일담

등록 2010-03-18 18:13수정 2010-03-19 10:09

스피어스를 둘러싼 모험, 후일담
스피어스를 둘러싼 모험, 후일담
폭탄 설치 협박 전화에 겉으론 차분했는데
그 뒤 사고뭉치 그, 혹시 ‘그날 일’ 때문에?
■ 한겨레 대중음악 웹진<100비트> 바로가기
먼저, 저 ‘모험’이라는 단어에 대한 기대치를 살짝 다운그레이드해주기 바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훔쳐온 제목을 붙이고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 것도 잠시, 난 벌써 후회하고 있으니까. 빌어먹을. 난 지금,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향해 속옷도 입지 않은 치마 속을 샅샅이 보여준 여자에 대해 얘기하려는 참이란 말이지. 아주 현란한 그래픽 노블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그보다 더한 모험이 여기 있을 리가 없다.

망할 놈의 패리스 힐튼(Paris Hilton). 그러니까 여기 ‘모험’이란 수사가 혹시라도 엄청 야하거나 혹은 겁나게 충격적인 일화를 폭로해줄 거란 기대는 아쉽겠지만 접어주기 바란다는 거다. 어쨌든 이건 그저 취재 뒷얘기일 뿐이니까. 모든 취재기가 태생적으로 후일담일 수밖에 없음에도 굳이 제목에 그걸 명기한 이유는 전적으로 그 때문이다. 젠장.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여성 인터뷰하러 공연장으로

아무튼,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 전이다. 2000년 가을, 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를 인터뷰하기 위해 영국으로 갔다. 두 번째 앨범 을 발표하고 순회공연에 나선 그녀는 유럽 공연의 첫 기착지로 영국을 택했고, 10월 13일과 14일 양일에 걸쳐 맨체스터의 M.E.N. 아레나(Manchester Evening News Arena)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다.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이미 (아직 치마 속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여성이었다. 데뷔 앨범 (1999)이 거둔 어마어마한 성공(미국에서 1,400만장 포함 도합 2,500만장 판매)에다 당대 여성 스타 부재의 호기까지 맞물려 - 마돈나(Madonna)는 가이 리치(Guy Ritchie)와 2세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고,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바비 브라운(Bobby Brown)으로부터 마약과 매를 동시에 맞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는 토미 모톨라(Tommy Mottola)와 이혼한 후 늘어난 살집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대세는 그녀의 것이었다. 인터뷰는 10월 13일(금요일이었다!) 오후, 공연장인 M.E.N. 아레나의 백스테이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밝혀둘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어떤 ‘볼거리’를 기대하는 마음 따위 추호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진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멘 아레나
하늘에서 내려다본 멘 아레나

유명인을 인터뷰할 때의 불문율 가운데 하나는, 인터뷰이는 약속시간에 늦어도 용서가 되지만 지각한 인터뷰어는 업계를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고 스피어스는 늦었다는 거다. 물론 여기까지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알다시피, 유명인들은 인터뷰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일이 절대 없다. 아마 자기들끼리 피의 서약이라도 나눈 모양이다. 아주 드물게 인터뷰이가 먼저 도착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데, 대개는 월마트에서 구입한 30달러짜리 전자시계를 차던 친구들이 벼락스타가 되고서 구입한 에르메스의 시침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다.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미담으로 각색되어 반드시 기사화되게 마련이다. 자존심을 잃을 뻔한 스타와 시간을 죽일 뻔한 기자 사이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상부상조인 셈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유의 기사에 감동을 소모하는 실수 따위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만, 여기서 하나만 언급하자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련함이다. 그녀는 나의 긴장감이 따분함으로 이완되는 과정의 가장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함으로써 인터뷰이의 자존심을 세우면서도 인터뷰어의 지루함까지 덜어주었다. “현명한 판단은 경험에서 나오고, 경험은 잘못된 판단에서 성장한다”는 속담 그대로다. 나이야 내가 많았지만 경력으로라면 그녀가 위였으니까. 당시 스피어스는 이미 11년차 연예인(그녀는 8살에 ‘뉴 미키 마우스 클럽’ 오디션을 치렀다)이었고, 난 기껏 7년차 평론가였다.

맙소사, 하필이면 13일의 금요일!, 하지만…


바야흐로 모험이 시작된 건 그때쯤이었다. 스피어스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카메라 앞에서 첫 질문을 던지려던 찰나, 주변에서 나직한 숙덕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내 지퍼는 잘 닫혀 있었다. 그럼 뭐가 문제지? 이유는 금세 파악되었다. 요약하자면, 어떤 얼간이가 공연장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전화를 걸어 왔다는 것이다. “맙소사!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하는구만.” 게다가 오늘은 저 악명높은 ‘13일의 금요일’이 아닌가? 그러나 일순 당황할 뻔했던 마음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멘 아레나의 건물 외벽 사인
멘 아레나의 건물 외벽 사인

당연한 거 아냐? 왜냐. 하나, 테러리스트라면 친절하게도 폭탄을 설치했으니 대피하라는 따위의 전화를 걸어주지 않는다는 것-그럴 거면 왜 폭탄을 설치했겠어? 둘, 설령 인명살상이 아니라 다른 어떤 정치적 의도-양고기 케밥에 안초비 소스 사용을 허가해달라거나 ‘올드 트래포드’에서 야구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따위 - 를 선전할 목적으로 폭탄을 설치했다 하더라도, 협박의 효과를 최대화시키려 한다면 공연이 임박했을 때 전화를 걺으로써 수 만 명의 관객들이 대피하는 요란법석쯤은 만들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 공연 네 시간 전이라면 게이트 오픈도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쯤은 알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니까 결론은, 전화를 건 자식은 아마도 백수 아니면 바보(아니면 백수인 바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티켓을 구하지 못한 나머지 화풀이나 해야겠다는 심산으로 전화 버튼을 누른 머저리인 게 뻔했다.

나만 그런 계산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인터뷰 장소를 호텔로 옮기자고 말하는 매니저의 표정은, 전례 없는 사태에 대한 ‘충격과 공포’의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애써 노력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피곤한데 급기야 이런 엿같은 일까지 벌어졌다는 짜증과 귀찮음이 역력했다. 나 또한 그런 유례 없는 상황에 임하여 낯선 윤리적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예의상 다급하게 뛰어나가줘야 할 것 같다는 인간적 도리와 내키지 않는 일을 할 때의 본능적 거부감이 뒤섞인 묘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스트립 클럽에서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마주쳤을 때, 살갑게 인사를 드리는 게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가에 관한 철학적 질문과 비슷한 것이었다. 물론, 여러분은 이것이 ‘런던 지하철 테러’(2005)는 말할 것도 없고, ‘9.11. 테러’(2001)조차 일어나기 전의 일이었다는 시대적 정황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2007년쯤이었다면 나는 폭탄이 터지기도 전에 패닉 상태에 빠진 스피어스와 그 일행에게 먼저 밟혀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포와 호들갑보다 따분할 만큼 평화롭게, 그런데…

짐작하고 있겠다시피,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다. 폭탄은커녕 폭죽 비슷한 것조차 (있을 리가) 없었다. 인터뷰도 아무 탈 없이 끝났다. 스피어스가 머물던 ‘래디슨 에드워디언 맨체스터’ 호텔의 메저닌에서 따분하달 만큼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패션도 한몫을 했다. 앞서 밝혔다시피 딱히 어떤 스펙터클 - 예컨대 그녀의 비디오클립에 등장한 라텍스 바디수트나 브라톱 따위 - 을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화장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에 헐렁한(!!!) 청바지와 프릴 달린 연노랑색 블라우스(1960년대 이래 지방 소도시 여성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스타일)를 걸친 모습은 일견 숙연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처음에 그녀가 개나리꽃인줄 알았다.

내가 만난 스피어스는 이보다 더 수수했다.
내가 만난 스피어스는 이보다 더 수수했다.

그러므로, 이제와 돌이켜보면, 이 ‘13일의 금요일’의 폭탄 협박 사건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판단력 중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랄까? 마돈나와의 프랜치 키스(물론, 이건 마돈나의 혐의점이 좀 더 크지만), 제이슨 알렉산더(Jason Alexander)와의 55시간짜리 초단기 결혼생활을 거쳐, 글머리에 언급한 ‘아이스께끼’ 사건까지. 내가 만난 그때의 현실 속의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서는 낌새조차 짐작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이후 뉴스 속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로부터 연이어 터져나왔으니까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흥미로운 참고의 대상이 바로 스피어스의 여동생 제이미 린(Jamie Lynn Spears)의 경우다. 인터뷰 현장에 동행했던 당시 9살의 제이미 린은, 내가 건낸 “안녕”이라는 인삿말조차 수줍어하며 엄마의 치마폭에(사실 이건 일종의 메타포다. 그날 스피어스의 엄마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굴을 파묻던 꼬마였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로부터 7년 후에 덜컥 임신을 해버렸던 것이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 때문에 붕괴된 건물에 갇혀있다가 생존한 사람들에 따르면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 홀로 남겨졌다는 불안감이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하는데, 지난 몇 년간 스피어스 자매가 벌인 일련의 예측불허 행각이 이날의 사건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한다는 말이다(혹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도 발매 전에 비슷한 일을 경험한 건지도 모른다. ‘Genie In A Bottle’이 뜨기 시작했을 무렵, 내가 만났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인기를 미심쩍어 하는 어린 아가씨였다). 만에 하나(그러니까 0.01% 정도의 신빙성에서) 그렇다면, 스피어스 양을 둘러싼 그날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니콜라 부르바키 주니어 / 음악칼럼니스트

한겨레 음악웹진 <100비트> 맛 보세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른 시각으로 ‘변주’
트위터와 미투데이에서도 귀 열어두세요
 

<한겨레>와 박은석, 김작가, 김현준 등 20여명의 젊은 대중음악평론가들이 함께 만드는 대중음악 웹진 <100비트>(www.100beat.com)가 17일 시험판(베타 서비스) 문을 열었다.

‘모든 음악 다른 시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살아있는 진짜 음악이라면 주류·비주류, 국내·국외를 가리지 않고 두루 소개할 예정이다. 새로 나온 앨범 리뷰뿐 아니라 재미와 깊이를 갖춘 월간 기획, 음악인 인터뷰, 에세이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낸다. 날마다 새로운 콘텐츠를 업데이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험판 <100비트>에는 음악평론가 이민희씨가 쓴 피처 ‘지드래곤을 올해의 앨범으로 뽑으려다 만 이유’, 소녀시대 <오!>와 카라 <루팡> 리뷰, 미국 팝 밴드 오케이 고(OK GO)와 헤비메탈 밴드 건스 앤 로지스의 리더 액슬 로즈 인터뷰, 지난 1월 내한공연을 한 펑크 록 밴드 그린데이의 프로파일, 브리트니 스피어스와의 인터뷰 후일담 등이 실려 있다.

웹진 이름인 ‘100비트’는 록 음악에 많이 쓰이는 박자를 뜻하는 음악 용어이자 비틀스의 무명 시절을 다룬 영화 제목 를 변형한 것이다. 숫자 ‘100’으로 상징되는 다양한 음악과 다양한 시각을 아우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100비트>의 로고는 음악을 상징하는 시디(CD)와 평론을 상징하는 펜을 함께 형상화한 것이다. 또 턴테이블에 걸린 엘피(LP)와 바늘을 상징하기도 한다. 단 한 곡을 듣더라도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하는 턴테이블은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리스너들을 떠올리게 한다.

<100비트>는 2주일 동안의 시험판 기간을 거쳐 오는 31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이날에 맞춰 <한겨레>는 전날인 30일 열리는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관련 별지를 발간해 신문과 함께 배달한다. <100비트>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인 트위터와 미투데이를 통해서도 누리꾼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두 서비스 모두 아이디는 ‘100beat’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 한겨레 대중음악 웹진<100비트> 바로가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