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토종’ 비디오아티스트 박현기 10주기 회고전

등록 2010-03-23 19:04수정 2010-03-23 19:28

고 박현기(1942~2000)의 1979년 퍼포먼스 작품 <물기울기>
고 박현기(1942~2000)의 1979년 퍼포먼스 작품 <물기울기>




한 남자가 텔레비전을 들고 서 있다. 귀를 덮는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이 영락없이 70년대 아저씨인데, 버거운 듯 그 시절 텔레비전을 용케 들고 버티고 있다. 한국땅 안에서 처음으로 비디오아트를 시도했던 고 박현기(1942~2000)의 1979년 퍼포먼스 작품 <물기울기>다.

한국 토종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박현기의 10주기를 맞아 재조명하는 전시회가 28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02-2287-3500)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000년 위암으로 갑자게 세상을 떠난 박현기는 최초의 국내파 비디오아트 작가지만 대중들에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홍익대 회화과에 들어간 뒤 전공을 건축으로 바꿔 졸업한 박현기는 고향 대구에서 실내장식 회사를 운영하면서 작가로도 활동했다. 1974년 우연히 대구 미국문화원 도서실에서 백남준의 <글로벌 그루브 지구의 축>(1973년 작)과 머스 커닝햄의 춤을 편집한 비디오 작업을 본 것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그는 비디오설치작업을 시작했고,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적인 소재와 텔레비전과 영상이란 인공적인 매체를 대비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백남준의 영향으로 시작했지만 박현기식 비디오아트는 다른 길을 걸었다. 백남준이 즐긴 첨단 하이테크보다는 ‘로테크’ 방식으로 비디오라는 새 미디어를 활용해 동양적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돌과 텔레비전 모니터로 만든 70년대 돌탑 시리즈부터 80년대 비디오 프로젝트를 활용하는 영상 작품들, 90년대 나무 사이에 모니터와 돌을 붙이는 ‘나무손 시리즈’ ‘만다라 시리즈’까지 그의 주요 작품들이 시기별로 마련됐다.

구본준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