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집 앨범 선보인 웅산
5집 앨범 선보인 웅산
고교 시절 비구니 생활… 대학 땐 록밴드 보컬로
재즈 만난 뒤 끝없는 변신…일본서 ‘골드디스크’
고교 시절 비구니 생활… 대학 땐 록밴드 보컬로
재즈 만난 뒤 끝없는 변신…일본서 ‘골드디스크’
재즈의 매력은 즉흥성에 있다. 연주자들의 교감 아래 오선지 위 음표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탈주한다. 무정형 속의 정형, 정형 속의 무정형. 같은 곡도 매번 연주 때마다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는 음악이 재즈다.
웅산의 삶은 재즈와 닮았다. 느낌이 오면 거리낌 없이 변화와 탈주의 길을 택했다. 새로운 도전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가 재즈 보컬리스트가 된 것은 타고난 운명인지도 모른다. 즉흥이 끝내 필연으로 이어지는 오묘한 섭리.
시작부터 그랬다. 비구니가 되고 싶어 절에 들어간 여고생 김은영은 문득 색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입가에 늘 맴도는 게 염불이 아니라 노래임을 깨달은 것이다. ‘웅산’이라는 법명을 간직한 채 그 길로 하산했다.
대학 시절, 록 밴드 보컬로 이름깨나 날렸다. 허스키하고 힘이 넘치는 목청은 건스 앤 로지스, 섹스 피스톨스 등의 거친 노래를 부르는 데 제격이었다. ‘이만 하면 기획사에서 가수 데뷔해보자고 연락 올 법도 한데….’ 연락은 오지 않았고, 그는 지쳐갔다. 그즈음 친구가 우연히 들려준 노래 하나가 삶을 바꿔버렸다. 빌리 홀리데이의 ‘아임 어 풀 투 원트 유’였다.
“처음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어요. 내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노래를 툭툭 던지는데, 그렇게 가슴을 후벼팔 수가 없는 거죠. 가수가 누군지, 어떤 장르인지도 몰랐어요. 이게 바로 재즈란 걸 알고는 무작정 재즈를 하기로 마음먹었죠.”
재즈 클럽에서 살다시피 한 그를 눈여겨본 이가 있었으니, 한국 재즈 1세대 피아니스트 신관웅이었다. “내 밴드에서 노래 한번 해봐라.” 1996년부터 매일 무대에 오르다시피 했다. 매번 새로운 곡을 숙제로 내준 덕에 밤샘 연습을 하기 일쑤였다. “단기 속성 하드 트레이닝이었죠. 힘들긴 했어도 너무 즐거웠어요.”
우연히 알게 된 일본 밴드 초청으로 98년 바다를 건넜다. 20명 남짓 관객을 앞에 둔 초라한 무대에서 피아노도 없이 콘트라베이스·색소폰만으로 이뤄진 파격 편성으로 1시간 내내 노래해야만 했다. “무대에 혼자 버려진 것만 같았어요. 공연 뒤 만신창이가 됐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다 결심했다. ‘그래, 공부하는 발판으로 삼자.’ 다음 일본 무대를 위해 3~4시간만 자며 연습하고 공부했다. 어느덧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큰 무대와 재즈 페스티벌에 초청받는 일이 잦아졌다.
2003년 일본 제작사와 만든 첫 앨범을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매했다. 묵직하고 힘있는 목소리에 일본 팬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2집(2005)에선 블루스를, 3집(2007)에선 자신만의 색깔을 내세운 자작곡을 대거 내세웠다. 4집(2008)에선 이전과 달리 속삭이는 창법의 편안한 재즈를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국내 팬들을 위해 팝 스타일의 자작곡으로 채운 ‘기프트 앨범’도 냈다. 도전과 변화를 한순간도 멈추지 않은 셈이다.
최근에는 5집 <클로즈 유어 아이스>를 국내 발매했다. 일본에선 지난해 12월 발매했는데, 일본의 권위 있는 재즈 전문지 <스윙저널>에서 ‘골드디스크’를 수상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수상으로, 일본 음악인들이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상이다.
이번 앨범에선 자작곡 두 곡을 제외하고 익숙한 스탠더드·컨템퍼러리 곡으로 채웠다. 초심으로 돌아가 정통 재즈를 다시금 되짚어보고 싶었단다. 3년째 봄마다 해온 ‘윈디 스프링’ 콘서트도 오는 27~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어 새 앨범 곡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웅산은 벌써부터 또다른 도전을 꿈꾼다.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선율에 맞춰 우아하게 노래하는 앨범을 구상중이다. 이르면 오는 6월 녹음할 6집에서 실현할 수도 있단다. 일본 평론가 니시오 게이치는 그를 두고 “가창력·표현력·정교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항상 진화하고 변화하는 ‘가혼’(노래하는 혼)이다”라고 평했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내는 게 늘 즐겁다”는 웅산에게 이보다 더한 칭송은 없을 것 같다. (02)720-3933.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포니캐년 제공
삶도 노래도…멈출 수 없는 ‘재즈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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