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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내 사랑 내곁에’ 제대로 못 부른 게 아쉬워

등록 2010-03-30 22:28수정 2010-03-30 22:30

김현식. 사진제공 한국대중음악상
김현식. 사진제공 한국대중음악상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김현식 20년만의 지상 나들이
여기선 안 늙으니까 목소리도 맛이 안 가서 좋아
옛날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들 리바이벌 보고싶어




어느새 20년이 됐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보다 더 많은 나이가 돼버렸다. 죽은 이와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코너 원고를 맡았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은 오로지 김현식뿐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쓸지는 그다음이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지난해 말부터 그가 문득문득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나에게 ‘거울이 되어’와 ‘여름밤의 꿈’을 남겨주고 떠난 ‘당신의 모습’은 지금 어떻게 변해 있을지…. (어릴 때부터 읽어온 책·인터뷰·기사에 관한 기억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사실관계가 틀릴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100비트(이하 100) : 잘 지내고 계세요?

김현식(이하 김) : 어, 잘 지내고 있지. (유)재하도 있고, (허)성욱이도 있고, 같이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면서 재미있게 보내고 있어.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다 구라야. 개똥밭보다야 여기가 훨씬 낫지. 근데 재하 그 자식은 여기 와서도 한 고집 하고 여전히 말술이야. 원래는 오늘도 인터뷰 같이 나오기로 했는데 어제 또 밤새 펐는지 연락이 안 되네.

100 : 올해가 김현식씨 사망 20주기예요. 실감 나세요?

김 : 잘 모르겠어. 여기선 나이 먹는다는 개념이 없으니까 실감이 안 나네. 여기선 늙지도 않으니까 목소리도 더는 맛이 안 가서 좋아. 사실 죽기 전에 내 마음대로 노래를 못 하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 난 3·4집 내고 신촌블루스랑 같이 하고 할 때 목소리가 제일 좋았던 것 같은데, 또 5·6집 때 그 탁한 목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고. 후배들이 헌정음반을 만들어주거나 동생들이 나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들 보면서 여기 온 지 벌써 이렇게 됐구나, 하고 가끔씩 떠올리는 정도야.

100 : 아, 티브이도 볼 수 있어요?

김 : 그럼. 그래도 명색이 천국인데 아랫세상에서 하는 건 다 할 수 있어야지. 얼마 전에는 케이블 방송 <엠비시 라이프>에서 해준 내 다큐멘터리도 봤어. 반가운 얼굴 많이 보이더라구. 김영 대장도 나오고. (김)종진이는 항상 나에 대해 너무 좋게 얘기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고 딱히 나를 부풀리고 꾸며 얘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을 얘기해줘서 좋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이름을 지켜주는 것도 고맙고, 공연 때마다 내 노래 ‘봄여름가을겨울’을 불러주는 것도 고맙고. 근데 자식들이 내가 (장)기호 때린 건 왜 얘기를 해서….

‘내 사랑 내곁에’ 제대로 못 부른 게 아쉬워
‘내 사랑 내곁에’ 제대로 못 부른 게 아쉬워

국민가요 된 건 다 내가 죽어서 그래

100 : 너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에 아쉬움은 없으세요?

김 : 갑작스러운 건 아니었지. 5집 만들면서 나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5집 봐봐. 그런 음반을 심신 멀쩡한 사람이 만들 수는 없어. 앨범 재킷부터 해서 수록곡들까지 완전 ‘다크 포스’ 아냐? 다만 6집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것에 대해선 계속 아쉬움이 남아.

100 : 6집에 있는 ‘내 사랑 내 곁에’가 거의 국민가요 수준이었어요. 당시엔 라디오만 틀면 그 노래가 나왔죠.

김 : 에이, 뭐 죽어서 그렇지. 한국 사람들이 정에 약하잖아. 사실 그렇게 큰 기대는 안 했어. 대마초 사건 겪으면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시대도 점점 바뀌어간다는 걸 느끼면서 더 는 예전만큼 큰 인기를 얻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 ‘내 사랑 내 곁에’ 만든 (오)태호도 그때는 완전 초짜 작곡가였으니까 그 정도로 큰 반응을 얻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100 : 그 노래는 듣자마자 오태호씨에게 달라고 했다면서요?

김 : 응. 1988년인가? 그때 태호가 신촌블루스에서 엄 선생(엄인호)하고 같이 기타를 치고 있었단 말이야. 걔가 연습실에서 혼자 기타 튕기면서 흥얼거리는데 느낌이 딱 오더라구. 이게 무슨 노래냐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만든 곡이래.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달라고 했지 뭐. 원래는 5집에 실으려다가 그러지 못하고 6집에 실은 거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노래를 완전하게 부르지 못한 게 계속 아쉬워. 그때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많이 아파서 노래하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 결국에는 가녹음된 게 그대로 앨범에 실렸는데 그게 그렇게 대박이 날지는 나도 몰랐지.

100 : 오태호씨는 당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윤상씨가 만든 ‘여름밤의 꿈’도 실질적인 윤상씨 데뷔곡이거든요. 사실 3집에 박성식씨가 만든 ‘비처럼 음악처럼’부터 시작해서 봄여름가을겨울 멤버의 곡들도 거의 데뷔곡이었잖아요. 신인 작곡가들 곡을 받는 걸 더 즐기셨던 것 같아요.

김 : 젊은 애들 곡 좋잖아. 신선하기도 하고. 지금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3집도 성식이나 재하, 종진이 곡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어? 그리고 특별히 신인 작곡가들 곡을 선호했다기보단 그냥 처음에 들어서 ‘필’이 딱 오는 노래들을 앨범에 넣은 거야. 그래도 명색이 작곡가들인데 그때 선배 가오 잡는다고 녹음실에도 못 오게 하고 내 맘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좀 미안한 마음도 있어. 곡 달라고 했을 때 선뜻 내준 애들인데.

아이씨 옛날 생각하니까 울컥하네

100 : 여기 남겨놓고 가신 노래들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노래는 어떤 거예요?

김 :
다 맘에 들어. 다 내 새끼 같은 노래들인데. 다만 ‘당신의 모습’은 내가 처음으로 만든 노래라 좀더 특별한 마음이 있지. 옛날에 ‘신촌파’라고 해서 (전)유성이 형이랑 엄 선생, 또 누가 있었더라? 암튼 이렇게 다 같이 몰려다니던 시절이 있었거든. 그때 막걸리집에서 술 마시다가 술 떨어지고 돈 떨어지면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가서 일 도와주는 척하면서 술이랑 안주 같은 것들을 몰래 빼왔단 말이야. 그걸 가지고 세브란스병원 뒷산에 올라가서 마시고 했었는데, 그때 내가 처음으로 엄 선생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줬었어. 정말 아득한 세월이구나. 아, 주책 맞게 자꾸 옛날 생각이 나냐.

100 : 올해가 김현식씨 사망 20주기라고 여러 가지 행사 많이 할 것 같아요. 이미 헌정음반도 나오고 다큐멘터리도 제작되고 했는데, 이런 것들 말고 뭐 특별히 원하는 거 있으세요?

김 : 옛날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들 있잖아. 종진이랑 (전)태관이, 그리고 기호랑 성식이랑 같이해서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이름으로 공연 한 번 해줬으면 좋겠다. 걔들이 정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서 연주하는 거 보고 있으면 흐뭇할 것 같아. 기호랑 성식이 만담도 오랜만에 듣고 말이야. 아이씨, 자꾸 옛날 생각하니까 울컥하네. 술이나 마시러 가야겠다. 재하 이 자식은 어디를 간 거야?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100비트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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