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장군의 발톱’
[리뷰] 연극 ‘오장군의 발톱’
태양이 웃고, 꽃과 나무가 걸어다니고, 소와 인간이 서로 아끼고 대화를 나누는 동화의 세계는 현대인이 꿈꾸는 고향이자 낙원의 모습이다. 그러나 바깥 세계는 계략과 죽음과 인간성 상실이 도사리고 있다.
9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오장군의 발톱>은 순수한 농사꾼 오장군이 전쟁터에 끌려가 어처구니없는 죽임을 당하는 여정을 다양한 비유와 알레고리로 보여준다.
가난한 소작인 아들인 오장군은 황소 먹쇠와 감자밭을 일구며 홀어머니와 산다. 어느 날 그에게 동쪽나라의 징집영장이 날아든다. 입대 전날 그와 꽃분은 ‘우리들의 아이’를 만들기 위해 결혼한다. 군대에서 오장군 이등병은 ‘사고뭉치’이고 ‘고문관’이었다. 그런 그에게 역정보 공작원이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그는 서쪽 나라에 붙잡혀 거짓 정보를 털어놓고 영문도 모른 채 총살을 당한다. 그가 “엄마야, 꽃분아, 먹쇠야”라고 울부짖자 서쪽 나라 사령관은 “죽음까지도 연기로 장식했다”며 경의를 표한다. 그의 죽음은 “남긴 유언은 ‘동쪽 나라 만세!”로 포장된다.
이 작품은 전쟁에 희생당한 한 인간 존재의 한없는 가벼움을 보여줄 뿐 아니라 냉혹한 현대 조직사회에서 겪는 인간 상실감도 느끼게 한다. 또 우리의 분단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눈 밝은 관객이라면 한 가여운 영혼이 겪는 절망의 끝에 꽃분이의 불러 오른 배에서 희망의 씨를 발견할 수 있을 터다.
이 연극은 극작가 박조열씨가 1974년 발표한 대표작으로, 그가 한국전쟁 당시 최전방에서 복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이듬해 자유극장이 명동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리려고 했으나 당시 억압적인 시대 분위기 때문에 개막 전 공연불가 판정을 받았다. 14년 만인 1988년 극단 미추가 첫선을 보였으며, 명동예술극장은 35년 만에 초연작을 되찾았다.
젊은 연출가 이성열씨는 자칫 딱딱하기 쉬운 극에 서정과 웃음, 해학의 요소를 적절하게 뿌리고 빠른 장면 전환으로 생동감을 불어넣으려고 애썼다. 연극 들머리에서는 오장군의 고향을 동화적이고 민화적인 분위기로 꾸며 자연 친화적인 농촌 사회와 냉혹한 현대사회와의 극명한 대조를 꾀하려 했다. 그러나 그 서주가 다소 길었다.
오장군 역의 김주완씨는 어수룩한 시골 청년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동쪽 나라 사령관 이호재씨와 서쪽 나라 사령관 권병길씨 등 중견배우들은 그로테스크한 연기로 극에 재미를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수더분한 시골 어머니 역을 맡은 고수희씨와 황소 먹쇠 역을 맡은 박용환씨의 연기가 가장 두드러졌다.
정상영 기자, 사진 명동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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