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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지나친 ‘부드러움’에 반감된 비극

등록 2010-04-20 23:22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이탈리아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의 비극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원수지간인 스코틀랜드 레이븐즈우드 가문과 아스톤 가문의 두 남녀 에드가르도와 루치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비극적인 죽음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벨칸토 아리아로 풀어낸 작품이다.

무엇보다 성악가의 고난도 기교를 최대한으로 끌어내므로 테너보다는 프라마돈나의 가창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오페라로 손꼽힌다. 특히 제3막 5장 ‘광란의 장’에서 루치아가 오빠 엔리코의 강요로 정략결혼을 한 첫날밤에 남편 아르투로를 칼로 찔러 죽이고 미쳐서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가 유명하다. 루치아가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는 것을 잊은 채 하얀 속옷 차림에 피를 상징하는 듯한 붉은 장미꽃을 안고 나타나 창백하면서도 기쁨에 들뜬 표정으로 사랑하는 에드가르도와 결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부르는 아리아는 섬뜩하면서도 매력 있는 노래이다.

이때 소프라노는 “어디선가 그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어!”부터 “그날이면 저 하늘도 아름다워질 거여요!”까지 30소절을 17분 동안 쏟아내면서 드라마틱한 발성으로 최고의 기교를 추구하는 ‘콜로라투라’의 고갱이를 보여준다. 마리아 칼라스가 바로 이 오페라에서 처음에는 느리고 서정적인 독창 카바티나로 플루트의 선율과 대화하듯 주고받다가 광기가 뻗쳐서 빠른 카발레타와 극적인 스트레타로 폭발하는 눈부신 고음의 아리아를 선보여 전설의 자리에 올랐다. 소프라노에게 영광의 통과제의 또는 무덤이 되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19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대극장 무대에 오른 국립오페라단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1993년 공연 이후 17년 만에 루치아로 돌아온 소프라노 신영옥에게 유난히 관심이 쏠렸다. 그는 1~2막에서는 자신의 장기인 맑고 부드러운 리릭소프라노의 목소리, 3막에서는 광기 어린 콜로라투라의 목소리와 사실적인 연기로 관객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았다.

이날 신영옥의 ‘광란의 아리아’는 능란했지만 지나치게 부드러운 게 흠이었다. 자연스럽게 프레이징 처리를 하면서 음악을 이끌어가는 섬세한 연주는 대가다운 풍모를 보였다. 그러나 콜로라투라보다는 리릭소프라노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는 고음 부분에서 힘이 실리지 못해 광기 있고 힘 있는 콜로라투라를 기대했던 관객의 기대를 채우지는 못했다. 오랜만에 루치아로 돌아와 긴장한 탓인지 고음에서 목소리의 볼륨과 힘이 떨어져 가장 극적인 대목에서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에드가르도 역의 테너 정호윤은 2007-2008 시즌 빈(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포와 <사랑의 묘약> 네모리노 역으로 호평받은 유망주답게 뛰어난 미성을 자랑했으나 역시 고음 부분에서 치고 나가는 힘이 부족한 듯해 아쉬웠다. 또한 국립오페라단 김주현 음악감독이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의 음악은 무겁고 윤기가 없었다. 전체적인 하모니에서 음을 잇는 레카토가 부족하다 보니 연주가 둔탁해 간혹 성악가들의 소리를 방해하거나 잡아먹는 경우가 더러 눈에 띄었다.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무대 디자인은 세련되었으나 막과 장 사이의 장면전환이 다소 긴 탓에 극의 맥을 이 끊기는 아쉬움도 있었다. 21일, 23일 공연.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국립오페라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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