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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엄숙함·두려움 공존하는 아시안고딕 찾고 싶었어요”

등록 2010-05-04 21:24

미디어작가 박찬경
미디어작가 박찬경
‘광명천지’전 여는 미디어작가 박찬경
“밤에 절집에 가보세요. 티브이 사극과는 정반대 세계가 펼쳐져요. 무섭고 낯설고 놀라운 것 천지더군요.”

최근 개인전을 시작한 미디어 작가 박찬경씨는 최근 서울 안팎 절집의 밤 풍경 신작들을 찍다가 새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해가 지면 절집들이 오싹 야릇한 판타지 무대로 바뀐다는 것을.

“저녁에 서울 신촌 봉원사를 갔더니 걸그룹 소녀시대 풍으로 드로잉한 소녀상이 팔상도 벽화에 출몰하더군요. 대웅전, 산신각 같은 주요 절집들 주변에 해가 지면 렌즈를 들이댔는데, 그 속에 깃든 우리 전통은 편안한 것이 아니라 정말 낯설고 기괴한 것들 투성이였습니다.”

그가 가리킨 최근 사진들은 기괴한 현대미술 같은 절간 이미지들이었다. 휘황한 조명을 걸친 도심 계곡 암자의 마애불은 저녁 나절 영화 속 몬스터(괴물)같은 이미지를 내뿜었고, 붉은 벽돌집에 슬레이트 지붕을 인 한강변 비구니절 산신각에는 공허한 긴장이 스쳐간다. 1970년대 전통동호인들이 신령스런 알터를 답사하거나 십이지신상 가면을 쓰고 춤사위를 펼치는 장면을 기괴하게 확대한 사진들도 눈에 띄었다. 엄숙함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중세적 양식, 일종의 ‘아시안 고딕’이라고 박씨는 소개했다.

최근 서울 화동의 갤러리 피케이엠에서 이런 사진 작업·영상들로 채운 그의 개인전 이름은 ‘광명천지’다. “본디 이상향을 뜻하지만, 디지털 기계 문명의 힘으로 세상 곳곳이 환해지고, 이미지가 침투한 현실도 반영한 이중적 의미”라고 했다. 2년전 선보였던 충남 계룡산 신도안 일대의 토착 종교 흔적을 찾는 영상 작업들의 후속 격이라지만, 뒷말들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10여년간 분단과 냉전 등 사회적 현실을 담은 비판적 영상 사진 작업들을 펼쳐왔던 그가 담을 쌓았던 상업화랑에서 팔리는 전시를 감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작업을 재생산할 토대를 갖추려면 화랑 공간이 있어야죠.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내느냐가 관건인데, 작업해보니 과거 전시와 별반 달라진 점은 없어요.”

‘단절된 우리 전통의 생경함을 그대로 드러내자’는 취지의 이 전시에서 박씨는 손대지 않았던 그림들도 그렸다. 요즘 텔레비전 화면 비율인 16 대 9 화폭을 온통 먹으로 칠하고 그 위에 금가루로 전통 칠성도의 별 세개, 별 한개를 찍고 그 아래 대기업 삼성과 엘지 그룹의 경영 슬로건을 넣었다. “광명천지의 이상향을 암시하는 초월적 기호”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얼핏 고급 컬렉터 눈길을 끌법한 미니멀한 점그림, 신도안 영상을 잘게 변주한 듯한 절집 사진들은 박씨의 작가적 이력에 걸맞지 않는다는 평가도 없지않다. 전통 문화의 심연에 푹 빠진 그의 작업들이 이후 어떻게 변신할지 지켜볼 일이다. 6월11일까지. (02)722-1757.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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