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부터 기획전시를 재개하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정문과 최근 복귀설이 돌고있는 홍라희 전 관장. 김명신 신소영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년 동면 끝 8월25일부터 기획전
화랑계 반색 운영청사진에 촉각
개혁안 잠잠…“공공성 강화해야”
화랑계 반색 운영청사진에 촉각
개혁안 잠잠…“공공성 강화해야”
2008년 4월22일 홍라희 당시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은 들끓는 여론 속에 관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불법 비자금으로 삼성가에서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비롯한 수백억 원대의 해외 미술품들을 사들였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빌미가 됐다. 삼성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된 홍씨는 경기도 용인의 삼성가 미술품 수장고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어 출국 금지된 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사법처리는 면했지만, 그의 퇴진으로 삼성미술관 리움과 산하 로댕갤러리는 동면에 들어갔다. 젊은 작가 등용문으로 이름 높았던 아트스펙트럼 전과 영국 거장 데미안 허스트 전 등의 기획전이 줄줄이 취소되고, 학예실 직원들은 구조조정 칼날에 줄줄이 짐을 쌌다.
숱한 의혹과 뒷담화의 온상이 됐던 리움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2년여 간 멈췄던 기획전을 오는 8월 재개하기로 확정한 것이다.
11일 미술계와 삼성그룹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리움은 8월25일부터 내년 2월까지 현대미술 전시인 ‘언모뉴멘털’(가칭)전을 연다. 지난 2008년 6월 비자금 사건의 여파로 아트스펙트럼 전을 취소한 지 2년2개월만이다. 우혜수 수석 큐레이터가 지난해 연말부터 기획해온 이 전시는 국내 작가 5명과 해외 작가 6~7명이 참여한다. 기념비적 규모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개념적 현대 미술을 꾸준히 투영해온 국내외 소장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여주는 얼개다. 국내 참여작가는 김홍석, 신미경, 사사, 곽선경, 잭슨홍이며 해외 작가로는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프랑스관의 대표 작가 소피 칼 등이 참여한다. 리움 쪽과 협업했던 한 미술계 관계자는 “삼성 쪽은 기획전 재개에 부정적이었으나 학예실쪽에서 계속 건의를 올린 끝에 전시가 성사됐다”며 “세계 현대미술과 공유할 수 있는 우리 미술의 최근 흐름을 대중친화적으로 풀어내는 성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리움 쪽은 이에 대해 “올 하반기 전시를 준비중이기는 하지만, 아직 세부 내용을 밝힐 상황은 아니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국내 최고의 사립 컬렉션인 리움의 기획전 재개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내 미술계 부동의 ‘지존’으로 꼽히는 홍 전 관장의 복귀가 함께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의 복귀는 지난 3월 이건희 회장의 복귀 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바 있다. 삼성문화재단 쪽은 “결정된 게 없다”며 함구하고 있지만, 그룹 내부에서는 미묘한 기류 변화가 느껴진다. 그룹 내부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도 복귀한 상황에서 관장 복귀가 타당하다는 안팎의 의견들이 계속 올라가는 것으로 안다”며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홍 전 관장이 공식 활동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리움의 정상화를 고대해온 화랑가는 반색하면서 앞으로 전시 운영의 청사진이 어떻게 나올지를 주시하고 있다. 박경미 피케이엠 갤러리 대표는 “홍 관장과 리움은 국내 최고의 컬렉터, 컬렉션인만큼 기획전 재개는 침체했던 미술계와 미술 시장에 큰 활력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아트스펙트럼 전 같은 기존 대표 전시들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하다”라고 했다.
비자금 사건 뒤 미술계 한 편에서는 삼성가의 취향과 욕망에 철저히 예속됐던 리움의 운영 체제를 이사회가 전권을 행사하는 공공적 컬렉션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삼성 쪽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언급도 내놓지 않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영욱 전주대 교수는 “미술관 활동 재개와 홍씨의 관장 복귀가 명분을 얻으려면 컬렉션을 사유화했던 관행과 미술투기 의혹에 대한 성찰, 리움 운영 개혁의 구체적 대안을 먼저 내놓는 것이 순리”라고 지적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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