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한국화가 김호득 한지 설치 작품
재미작가 임충섭 ‘월인천강’ 영상
재미작가 임충섭 ‘월인천강’ 영상
우리는 항상 물을 마시고 물로 씻으면서 물의 이미지와 소리를 보고 듣는다. 이런 강력한 일상성이야말로 물이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미술가들에게 매혹적인 소재로 다가오는 이유다. 게다가 물은 특정한 형태에 머무르지 않으며, 문화적 상징성도 풍부하다. 낮은 곳 향하며 빈 곳을 채우고 흐르는 대인의 풍모가 또다른 영감을 낳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물의 화두가 작가의 연륜과 만난다면? 최근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온 중견 작가들이 물을 소재로 한 색다른 근작들을 내놓고 있다. 점과 선이 펄펄 튀는 야성적인 추상 수묵화로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화가 김호득씨는 서울 도심 덕수궁 미술관에 먹물의 바다를 만들었다. 시간을 관조하는 작품들로 구성한 기획전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사진·7월4일까지·02-2188-6000)의 도입부인 1전시실. 먹물로 채운 길쭉한 수조가 놓이고, 그 위에 일렬로 매달린 수십장 한지가 너풀너풀 날린다. 검은 먹물 위로 텅 빈 한지들의 이미지가 비치면서 잔잔한 파동을 그린다. 설치 작업 <흔들림, 문득>은 여백의 청량감 속에 한지와 먹물 이미지가 눈 속에 겹쳐지면서 텅 빈 공간에 붓질 드로잉을 한 듯한 느낌을 던져준다. “가장 아날로그한 자연 비디오 작업”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옆에 놓인 고 박현기 작가의 비디오 설치물 <반영>은 플라스틱 사면체의 맨 위 표면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투영한 ‘강이 흐르는 상자’다. 이어진 뒷벽에는 유장한 강물의 흐름을 깔깔한 선들의 연속된 이미지로 풀어낸 도윤희씨의 대형 신작 그림 <액체가 된 고민>이 내걸렸다. 메시지와 형식이 잘 들어맞는 이 세 작품이 공간에 친구처럼 어울리는 가운데 관객들은 물을 관조하는 시선의 여유를 즐기게 된다.
‘월인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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