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간송미술관서 만나는 ‘구한말 화단’

등록 2010-05-18 22:12

간송미술관서 만나는 ‘구한말 화단’
간송미술관서 만나는 ‘구한말 화단’
조선왕조 망국 100주년 추념회화전
심전 ‘성재수간’…민영익 난죽 ‘눈길’




그림에서 휭휭 바람 소리가 들린다. 가을밤 산봉우리 아래 숲 속을 일렁거리게 하는 처연한 바람이다. 숲속 초막 안에는 홀로 바람 소리를 듣는 선비가 보인다. 구한말 오원 장승업의 뒤를 잇는 그림 대가였던 심전 안중식(1861~1919)의 청록산수화 걸작 <성재수간>은 우리 옛 그림에서 가장 쓸쓸한 풍경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해 봄 차린 ‘조선망국100주년추념회화’전에서 눈여겨볼 화가가 바로 심전이다. 1층에 그가 그린 봄, 여름, 겨울 산수화와 가을 산수 풍경인 <성재수간>이 따로 떨어져 전시되고 있다. 봄, 여름, 겨울 산수풍경들은 모두 경술년 국치 때인 1910년 그렸다. 쌀알 모양의 미점을 발랄한 기세로 가득 찍어 여름 산 숲의 청신한 신록을 드러낸 <계산연우>와 화사한 봄꽃의 기운을 잔뜩 부려놓은 <무궁춘색> 등에서 나라가 망했다는 비분은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다음해 그린 대작 <성재수간>에서 분위기는 확 바뀐다. 그 맞은편 1918년 작 인물화 <한산충무> 또한 창을 거꾸로 들고 있는 충무공의 모습을 무속도풍으로 그렸다. 양화와 전통 화법이 뒤섞인 충무공의 ‘땅땅한’ 자태가 기괴한 느낌을 전하지만, 볼수록 비장감이 우러난다. 국권 상실 뒤 일제의 마수를 깨달은 심전의 고뇌가 필선과 채색에서 느껴진다. 1950년대 서구풍의 도식화한 충무공 표준 영정이 나오기 전 사람들이 인식했던 충무공의 원형적 이미지 또한 보여주는 그림이다.

간송미술관은 ‘재미없고, 의미는 구구절절인’ 구한말 작품들을 부러 골라서 조명했다. 나라가 망하고, 서구의 근대 문물이 밀려오면서 전통 그림으로 밥벌이가 되지 않고 이미지와 감각을 억지춘향 식으로 익혀야 했던 당시 화단의 상황, 그 시대를 산 화인들의 의식 속을 작품으로 대리 체험할 수 있다. 맥 빠진 중국화풍에 젖은 작품들이 많지만, 간간이 전통 문인 정신이나 근대적 개성을 고집하는 수작들도 섞여 있다.

1층 전시실에서 심전과 더불어 주목되는 게 사군자다. 굳세고 단정한 필력으로 난과 댓잎을 그어낸 선비 민영익의 난죽과 혈기방장한 독립투사 김진우의 사방으로 뻗치는 듯한 난죽 그림을 대비해 보는 재미가 있다.

2층은 당시 작가들의 처세관을 드러내는 감각적 소품들이 많다. 분칠한 여인처럼 난꽃을 물들인 친일파 귀족 조동윤의 채색란과 근대 양화와 전통화 사이에서 어정쩡한 구도를 풀지 못하는 고희동의 인물풍경화 등이 시대상을 짐작케 한다.

김규진의 학 그림과 안중식의 모란, 조석진의 물고기 그림이 맛깔스럽게 배어든 쥘부채 그림은 기개는 빠졌지만 발랄한 공간 감각이 깃든 수작들이다. “눈 대신 머리로 보는 전시를 느껴보라”고 백인산 연구위원은 귀띔한다.

노형석 기자, 도판 간송미술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