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여든다섯 노장의 한국무대

등록 2010-06-03 21:08

연출가 피터 브룩
연출가 피터 브룩
현대 연극의 신화 피터 브룩의 ‘11 그리고 12’
‘막’구분 없이 간소한 소품에 다국적 배우
철학·정치적 이슈 명료하게 표현한 걸작




올해 여든다섯 살의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사진)은 현대 연극계의 살아있는 신화이다. 옥스퍼드대학 시절 열여덟 살의 나이로 연극 <닥터 파우스트>를 대학극회 무대에 올린 것을 시작으로 60여년간 연극의 정형화와 규칙을 깨는 70여편의 작품을 발표해온 그의 삶은 곧 현대 연극의 역사였다. 그의 신작 연극 <11 그리고 12>(사진 아래)가 17~20일 엘지아트센터에서 한국 초연된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 공연된 적이 없다. 아프리카 작가 아마두 함파테 바가 그의 스승인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 지도자 티에르노 보카르의 삶과 신념을 담은 책을 바탕으로 브룩과 오랜 동료인 마리 엘렌 에스티엔느가 공동으로 무대화시킨 작품이다.

2004년 초연한 <티에르노 보카르>의 후속작으로 아프리카 수피교의 ‘완벽의 진주’라는 예배 의식 때문에 빚어낸 종교 갈등을 다뤘다. 1930년대 초반 아프리카 말리에서 기도문을 11번 또는 12번 암송하는 것이 맞는지를 두고 앙숙 관계에 있던 두 종파가 갈등을 빚다 살인사건까지 벌어진다. 티에르노 보카르는 두 종파를 화해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부족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보카르는 “나는 12번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네. 자네는 왜 11번에 그리 반대를 하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마을을 떠나 객지에서 가난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연극에서는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브룩의 애정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는 70년대 아프리카를 여행한 뒤 <일어나라 알버트>를 시작으로 <양복>, <티에르노 보카르>, <쉬즈반지는 죽었다> 등 아프리카 관련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또한 단순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무대 미학과 연출효과를 버림으로써 연극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브룩 연출의 뛰어남도 엿보인다.


 연극 <11 그리고 12>
연극 <11 그리고 12>
브룩은 2009년 11월 파리의 뷔프 뒤 노르 극장에서 초연 당시 무대에 카펫 한 장을 펼쳐놓고 7명의 다국적 배우들과 일본 전통 악기의 라이브 음악과 작은 소품만으로 공연을 이끌어갔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미의 ‘막’의 구조는 없다. 해설자가 등장해 1930년대 초반에 있었던 실화를 들려주면 배우들은 그 이야기 속의 인물을 연기하고 선문답 같은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브룩은 이번 작품에 대해 “주인공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폭력을 거부하는, 어떤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관용”이라며 “이런 대가를 치르고서야 인간은 좀더 높은 단계로 승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2월 런던 공연에서 영국의 진보적 신문인 <가디언>은 “<11 그리고 12>는 고요하고 사색적인 작품으로,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어려운) 이슈를 명료하게 표현하는 피터 브룩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60여년간 피터 브룩의 예술 인생은 혁신과 모험, 그 자체였다. 그는 연극 작업 외에도 스물세 살에 영국 코번트 가든 왕립 오페라 하우스 상임감독으로 지명되어 <라보엠>, <보리스 고두노프> 등 오페라 5편을 연출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와 오페라 <살로메> 작업을 하는가 하면 성서보다도 15배나 긴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9시간짜리 연극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 <파리대왕>, <마라/사드>, <리어왕>, <비범한 사람들과의 만남> 등 영화작업에도 관심을 쏟는 등 노장의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전세계 15개 언어로 번역되어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성전으로 꼽고 있는 <빈 공간>을 비롯해 <열린 문>, <전환점>, <비밀은 없다>, <그로토프스키> 등 그의 연극철학과 이론을 알리는 집필작업에도 결코 손을 놓지 않고 있다. (02)2005-0114.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