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카미치&파트너 제공
요시오카 도쿠진 ‘스펙트럼’전
일상 소재로 빚어낸 이색 공간
일상 소재로 빚어낸 이색 공간
디자이너는 신이다! 일상의 사물을 주물러 새로운 스타일을 빚어내는 디자이너들의 의식 밑바닥에는 항상 이 명제가 도사리고 있다. 디자인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 ‘디세뇨’는 본디 ‘신의 기호’라는 뜻이다. 디자이너가 자본의 대리인으로, 디자인이 ‘음모’ ‘획책’ 등의 의미로 더 쉽게 읽히는 세태에서 디자이너가 작은 조물주이고 싶다는 건 역설적으로 더욱 절실한 욕망이 되는 법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일본 디자이너 요시오카 도쿠진(43)는 그 절실한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지난달 1일부터 서울 청담동 뮤지엄닷비욘드뮤지엄에 차려진 그의 전시 ‘스펙트럼’은 매끄러운 스타일 대신 빛과 대기, 흐름처럼 유동하는 형이상학적인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전시장 1, 2층을 덮은 것은 200여만개의 빨대 더미다. ‘토네이도’(사진)로 이름붙인 이 설치 작업은 새하얀 전시장 벽면과 어우러져 쓰나미 언덕처럼 빛난다. 관객들은 흰 기운이 피어오르는 구름 동산을 거니는 듯한 느낌에 젖는다. 눈, 구름 속 입자들이 빚어낸 듯한 독특한 대기감, 공간감이 권위적인 백색 공간과 기묘하게 만난다. 빨대 더미 곳곳엔, 역시 일상 소재들로 만든 의자들도 있다. 여러 겹 종이를 벌집 모양으로 자르고 펼치고 겹쳐서 앉는 이 체형에 맞게 변형되는 ‘허니-팝’과 폴리에스테르 섬유를 가마통에서 빵처럼 구워 모양새를 만든 ‘파네 의자’, 마치 생생한 물결 같은 광학 렌즈 재질의 워터블록 의자를 엿본다. 들머리에 공개된 신작 ‘레인보 처치’는 빛살 디자인의 향연이다. 천장 높은 공간 끝부분에 설치한 약 9m 높이의 프리즘 블록 450여개로부터 빛이 무지개처럼 퍼져나온다.
작가는 “점점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형태 이외의 감각이 디자인 모티브가 된다”고 했다. 스승이던 패션 대가 이세이 미야케가 주름 의상으로 동양적 여백을 재창조했듯이 작가는 실체 없는 정신과 감성의 세계를, 살풋하게 느껴지고 만져지는 실체로 디자인한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무슨 생각을 한다는 것과 같다”는 건축거장 안도 다다오의 말이 실감나는 작업들이다. 30일까지, (02)577-6688.
노형석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