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동경’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동경’
패션 역사에서 ‘명품’과 ‘짝퉁’을 둘러싼 뒷이야기는 감초와도 같다. 우리 역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멋을 부리려고 수입 명품에 집착하는 선조들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지난 2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고려실에서 선보이고 있는 테마전 ‘고려동경’(8월29일까지)은 화장도구인 구리 거울(동경)을 통해 고려 사람들의 패션 욕망, 당대의 명품·짝퉁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려준다.
구리거울(동경)은 고대 의례품이었지만, 고려 때가 되면 남녀에게 모두 사랑받는 생활용품이 된다. 박물관에 1500여점이나 소장된 고려 거울이 다른 시대보다 월등히 많고, 무덤에서도 빗, 동곳 등과 함께 출토된다는 전시 내용이 이를 입증한다. 눈길을 끄는 건 11~12세기의 고려제 짝퉁 거울들. 당시 중국 송나라에서 옛 한나라, 당나라 때 신령스러운 동물이나 글자를 새긴 동경을 본떠 만드는 복고 트렌드가 대유행하자, 그 영향을 받은 고려에서 직수입품을 다시 본떠 만든 것들이다. 후저우, 양저우, 항저우 등 중국 현지 생산지가 돋을새김된 수입 동경과 이를 그대로 베낀 고려제 동경들도 나와있는데, 새긴 글자 명문의 선명도가 달라 짝퉁 여부가 구분된다. 12세기 이후엔 넝쿨 무늬 등을 새긴 자체 디자인의 수출용 고려 동경도 보인다. 고려에서 만들었다는 뜻의 ‘고려국조(高麗國造)’라는 일종의 브랜드 동경인데, 요즘 수출품에 찍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원조격이다.
동경 문양에 새긴 무늬에서 고려인들의 삶과 예술 세계를 엿보는 재미도 각별하다. 상투를 튼 구경꾼들이 모인 씨름판 거울, 큰 파도 헤치며 항해하는 배의 모습을 담은 ‘황비창천(惶丕昌天:밝게 빛나고 창창한 하늘)’글자새김 거울, 청자나 분청사기 무늬의 모티브인 학이나 두마리 물고기를 담은 거울 등등이 눈에 띈다.
국내 고려 동경들을 처음 집대성해 분석한 이 전시는 충남 서천 추동리 무덤 출토의 물고기무늬 동경을 싸고 있던 종이쪽에서 기해(己亥:1119년 또는 1179년)년이라는 간지를 찾아내 동경의 기준 연대를 고증했으며, 동경의 성분이 구리(70%)에 주석과 납이 각각 10%이상씩 섞였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한편 상설관 3층 백자실에서는 달항아리 등 조선 백자 항아리 명품들을 집중 소개하는 테마전도 열리고 있다. (02)2077-9499,2077-9531.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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