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펜더기타 헌정 무대
관객 기립박수로 경의 표해
관객 기립박수로 경의 표해
신중현(72)과 기타가 쌍을 이룬 몸짓이 번쩍이는 백색 조명 아래 정지화면처럼 뚝뚝 끊어지면서 또 이어졌다. 분신과도 같은 펜더 기타는 때론 그의 몸에 착 달라붙었고, 때론 그의 몸을 이탈해 허공에 떠 있었다. 칠순이 넘은 기타리스트의 신들린 듯한 몸사위에 맞춰 기타는 피처럼 붉은 울음을 토해냈다. 신중현이 기타가 되고 기타가 신중현이 돼버린 무아지경의 즉흥연주. 앙코르 무대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태워버린 신중현은 기타를 바닥에 내려놓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거장의 반세기 음악 인생에 경의를 표했다.
4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신중현 헌정 기타 기념 공연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2006년 은퇴를 선언한 그를 다시 무대로 불러낸 건 지난해 말 세계적인 기타 회사 펜더로부터 헌정받은 기타였다. 전세계에서 여섯번째이자 아시아에선 최초의 영예다. 이에 보답하고자 그는 헌정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 것이다.
1부에선 자신 또는 다른 가수가 부른 히트곡을 연주하며 직접 노래를 불렀다. ‘빗속의 여인’, ‘커피 한잔’(펄시스터스), ‘봄비’(이정화), ‘리듬 속의 그 춤을’(김완선) 등이 울려퍼지자 왕년의 중장년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추억을 되새겼다. 두 아들 대철, 윤철과 함께 석 대의 기타로 수놓은 ‘미인’은 1부의 하이라이트였다. 2부에선 김삿갓의 시에 곡을 붙인 토속적인 록과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록을 줄곧 연주했다. 신중현의 음악적 욕심이 집대성된, 다소 난해한 무대였음에도 관객들은 깊숙이 빠져들었다.
이날 공연은 김종진, 김세황, 이현석, 윤병주, 박주원, 정민준, 하세가와 료헤이 등 수많은 후배 기타리스트들이 관람했다. 공연 뒤 대기실을 찾은 이들은 “너무나 존경하고 감사드린다”고 인사했고, 신중현은 “후배들이 록 음악을 계속해서 널리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은 전날 트위터로 ‘번개’를 때려 기타리스트 30여명을 소집했다. 김중만 사진작가는 이들 사진을 하나하나 찍었다. 그는 이날 공연 사진과 함께 화보집을 만들어 신중현에게 저작권까지 헌정할 예정이다.
신중현은 오는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4개 도시를 돌며 헌정 기타 기념 공연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록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체구는 작지만 무한의 경지에 이르는 동양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던 꿈을 이룬 뒤 지을 그의 행복한 미소가 벌써부터 어른거린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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