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준
첫 개인전 여는 노상준
구멍 숭숭 뚫린 골판지가 갖가지 변신 요술을 부린다. 허접한 회백색 골판지 조각들이 접붙여져 우주가 되고 삶이 되고 산과 바다의 풍경이 된다.
회전목마부터 전투기까지
종이로 정교한 형상 빚어내 조그맣게 자르고 으깨어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에메랄드 성과 재주 부리는 서커스장 동물들을 빚고 2차 세계대전 때의 전투기, 회전목마, 연인들의 모습을 만들기도 한다. 정교한 형상에, 알록달록 예쁜 색감까지 입혀 보는 재미가 쏠쏠한 골판지 세상. “이렇게 골판지를 가지고 온갖 만물을 빚어내며 노는 것이 작업”이라고 젊은 작가 노상준(35)씨는 말한다. 서울 통의동 갤러리 팩토리에 차린 그의 첫 개인전 ‘이동 유원지’(28일까지, 02-733-4833)는 골판지로 만든 지금 이 시대 인간 군상들의 규정된 삶과 작가 나름의 욕망이 표현된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 재료로만 생각한다면, 허접한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풍자적 작업을 연상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무거운 풍경을 가벼운 원형의 골판지로 만들어 허공에 둥둥 띄워놓거나 바닥에 풀어놓은 그의 조형물들은 철학적 힘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예사롭지 않은 재기와 상상력이 느껴진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영국 유학 시절 골판지는 제 유일한 위안이었어요. 고국의 부모님이 라면, 약 등의 일상용품들을 담아 보내준 골판지로 된 소포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리더군요. 당시 집안 문제와 유학 생활의 우울증 등이 겹쳐 대인기피증에 시달릴 때였는데, 낯선 이국땅의 공동체적 질서 속에서 나름 제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소포를 열어보고, 상상하고, 그 재료인 골판지로 노는 것이었지요. 아마도 그게 지금껏 골판지 작업을 하는 심리적 배경이 된 것은 아닌가 싶어요.” 유학 때 소포 받고 얻은 영감
인간 삶·욕망 담아 작품 선봬
그의 말대로 전시장의 골판지 조형물들은 작가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 욕망,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하나의 풍경으로 연출해 진솔하게 풀어내는 구도를 보여준다.
“일종의 놀이동산을 형상화했다”는 작품들은 연못에 비친 밤하늘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군중들(<불꽃놀이>)이나 골판지 계곡 안에 가득 들어찬 자동차들(<홀리데이>), 등대 섬으로 몰려드는 배들의 모습(<등대>)을 빚은 작품에서 보이듯 특정한 쏠림, 몰려듦에 대한 두려움, 거부반응 따위를 담은 것들이 많다. “꽉 짜여진 사회 공동체의 인위적 질서가 강요되는 상황을 느끼는 대로 풀어놓으려 한 것인데요. 유치하긴 하지만, 나무 숲이나 정자가 있는 절벽 아래서 회전목마처럼 빙빙도는 말, 호랑이의 모습을 흔들리는 판 위에 매달아 놓은 것도 그런 상황 속에서 쳇바퀴를 도는 제 나름의 압박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실 권태롭지만, 가벼운 골판지 재료로 예쁘장하게 표현한 설치작업들은 자기표현에 충실하다는 강점 외에도, 층층이 구멍 뚫린 골판지의 얼개처럼 해석의 갈래를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원래 서울시립대에서 공공조각을 공부하다 영국 첼시 예술디자인학교에 유학한 노씨는 3년 전 귀국한 뒤 사진, 영상과 골판지 작업을 함께 하면서 우리 사회를 관찰하며 느낀 감상들을 작업에 투영해왔다. “앞으로 제가 어떤 작업을 할지 저도 궁금해요. 평소 삶을 겪으면서 느끼는 생각이나 체험들이 뚝딱 작품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아요.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는 편이랄까요…”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종이로 정교한 형상 빚어내 조그맣게 자르고 으깨어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에메랄드 성과 재주 부리는 서커스장 동물들을 빚고 2차 세계대전 때의 전투기, 회전목마, 연인들의 모습을 만들기도 한다. 정교한 형상에, 알록달록 예쁜 색감까지 입혀 보는 재미가 쏠쏠한 골판지 세상. “이렇게 골판지를 가지고 온갖 만물을 빚어내며 노는 것이 작업”이라고 젊은 작가 노상준(35)씨는 말한다. 서울 통의동 갤러리 팩토리에 차린 그의 첫 개인전 ‘이동 유원지’(28일까지, 02-733-4833)는 골판지로 만든 지금 이 시대 인간 군상들의 규정된 삶과 작가 나름의 욕망이 표현된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 재료로만 생각한다면, 허접한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풍자적 작업을 연상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무거운 풍경을 가벼운 원형의 골판지로 만들어 허공에 둥둥 띄워놓거나 바닥에 풀어놓은 그의 조형물들은 철학적 힘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예사롭지 않은 재기와 상상력이 느껴진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영국 유학 시절 골판지는 제 유일한 위안이었어요. 고국의 부모님이 라면, 약 등의 일상용품들을 담아 보내준 골판지로 된 소포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리더군요. 당시 집안 문제와 유학 생활의 우울증 등이 겹쳐 대인기피증에 시달릴 때였는데, 낯선 이국땅의 공동체적 질서 속에서 나름 제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소포를 열어보고, 상상하고, 그 재료인 골판지로 노는 것이었지요. 아마도 그게 지금껏 골판지 작업을 하는 심리적 배경이 된 것은 아닌가 싶어요.” 유학 때 소포 받고 얻은 영감
인간 삶·욕망 담아 작품 선봬
골판지에 펼쳐진 낯선 세상
“일종의 놀이동산을 형상화했다”는 작품들은 연못에 비친 밤하늘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군중들(<불꽃놀이>)이나 골판지 계곡 안에 가득 들어찬 자동차들(<홀리데이>), 등대 섬으로 몰려드는 배들의 모습(<등대>)을 빚은 작품에서 보이듯 특정한 쏠림, 몰려듦에 대한 두려움, 거부반응 따위를 담은 것들이 많다. “꽉 짜여진 사회 공동체의 인위적 질서가 강요되는 상황을 느끼는 대로 풀어놓으려 한 것인데요. 유치하긴 하지만, 나무 숲이나 정자가 있는 절벽 아래서 회전목마처럼 빙빙도는 말, 호랑이의 모습을 흔들리는 판 위에 매달아 놓은 것도 그런 상황 속에서 쳇바퀴를 도는 제 나름의 압박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실 권태롭지만, 가벼운 골판지 재료로 예쁘장하게 표현한 설치작업들은 자기표현에 충실하다는 강점 외에도, 층층이 구멍 뚫린 골판지의 얼개처럼 해석의 갈래를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원래 서울시립대에서 공공조각을 공부하다 영국 첼시 예술디자인학교에 유학한 노씨는 3년 전 귀국한 뒤 사진, 영상과 골판지 작업을 함께 하면서 우리 사회를 관찰하며 느낀 감상들을 작업에 투영해왔다. “앞으로 제가 어떤 작업을 할지 저도 궁금해요. 평소 삶을 겪으면서 느끼는 생각이나 체험들이 뚝딱 작품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아요.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는 편이랄까요…”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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