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큐레이터 조선영 씨의 기획전 ‘기념비적인 여행’ 전시관 전경(위 사진). 이 기획전에 설치된 김상돈 씨의 ‘불광동 토템’(아래).
아시아 작가 12명 기획전 ‘기념비적인 여행’
재개발은 우리 근현대사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온 단어다. 20세기 초부터 끊임없이 작동해온 이 재개발이란 논리는 토목공사와 앞뒷면을 이루어왔다. 산과 논밭을 갈아엎고, 삶터를 뭉개면서 도시와 도로 등을 닦는 토목공사는 4대강 사업에서 보이듯 눈앞의 시공간을 순식간에 뒤바꾸며 시대를 끌어갔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열리는 독립 큐레이터 조선령씨의 기획전 ‘기념비적인 여행’(8월21일까지, 02-547-9177)은 그 시공간적 격변이 주는 충격과 힘을 포착하려 한다.
태생적으로 공간에 민감한 시각예술인들이 난폭하게 공간 질서를 재배치하는 재개발 이념 앞에 맞부딪혀 어떤 에너지와 영감을 짜낼까. 기획자는 그것을 다양한 스펙트럼이 밴 작업들로 풀어 보여준다. 정말 각양각색이다. 중국, 방글라데시, 대만, 한국 작가 12명은 자기네 지역에서 급속히 강행된 자연, 전통 공간의 압축과 해체, 파괴를 다채로운 영상, 조형 언어로 드러낸다.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이 작가 김상돈씨의 지하층 설치 영상이다. 영상 작품 <미러>는 서울 서북 뉴타운 일대의 재개발 지역 폐가에 걸린 거울의 흔들리는 영상과 건물 등을 부수는 개발 현장의 소음을 대비시킨다. 재개발이 우리 삶에 안겨주는 불안감, 불편함 따위가 시각과 청각이 섞인 얼개로 생생하게 재구성되어 전해진다. 가짜꽃을 비닐 의자에 놓은 <불광동 토템>은 그 암울한 소품으로 제격이다.
‘재개발악’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예술적 소재로서 재개발이 간직한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의지는 다른 작가들에게도 확인된다. 전능한 조감도 시점의 카메라가 상하이 철거 현장 위를 훑는 중국작가 젠첸류의 <건설중>이나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폐선 분해 현장, 인부들의 움직임을 몽환적인 화면으로 포착하며 숭고미를 발산시키는 야스민 카비르의 작업 등은 인상적인 수작들이다. 다만 장르, 조형의식, 현실참여 시각 등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여러 작업들이 막연히 뒤섞이다 보니 전시는 산만해졌다. 좀더 출품작의 맥락이 정리되었다면, 시각예술 차원에서 재개발 문제를 냉정하게 짚고 들어가려는 기획 의도가 더욱 돋보이지 않았을까.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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