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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포장 벗은 한국 사회’ 중국에 말을 걸다

등록 2010-08-02 22:33

이세현 작 ‘비트윈 레드-99’
이세현 작 ‘비트윈 레드-99’
7일 열리는 상하이 ‘플라스틱 가든’전
요즘 국제 엑스포로 흥청거리는 중국 상하이 도심의 화이하이시루 거리에는 옛 철강공장을 개조해 만든 예술촌이 있다. 이른바 ‘레드 타운’으로도 불리는 훙팡 예술특구다. 조각물과 카페, 화랑 등으로 둘러싸인 이 예술 별천지에서 21세기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 난장이 시작된다. ‘플라스틱 가든’, 중국말로는 소료공원(塑料公園)이란 야릇한 제목이 붙은 한국현대미술전이 7일 훙팡 예술구 안의 민생현대미술관에서 막을 올린다.

구본창·김기라·이세현·정연두…현대미술계 주역 16명 참여 전시

9월12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는 아라리오 베이징 출신의 국제 큐레이터 윤재갑씨가 틀을 짰다. 구본창, 김기라, 노상균, 문경원, 박성태, 배영환, 백현진, 이세현, 이용백, 이형구, 전준호, 정수진, 정연두, 최정화, 함진 등 현재 한국 현대미술계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작가 16명이 참여한다. 베이징과 더불어 중국 미술시장의 양대 산맥인 상하이에서 대규모 한국 작가전이 열리는 건 2003년 기획자 김선정씨가 작가 15명의 작품을 소개했던 ‘양광찬란’전 이래 7년 만이다.

‘플라스틱 가든’이란 제목처럼 이 기획전은 기존 해외 작가 소개전에서 흔히 되풀이된 홍보 중심의 포장된 관행을 벗어던졌다는 점이 도드라진다. 1990년대 말 이후 시장의 득세 속에 무력감에 짓눌려온 한국 작가들의 속내를 날것대로 보여주겠다는 게 기획자의 노림수다.

1980년대 말 동구권 붕괴의 이념적 충격, 1997년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사회적 정의와 정치적 전위가 사라지고 무력감이 지식인층에 만연했던 한국의 사회적 변화가 전시의 동력이 된다. 이런 변화가 우리 현대미술에서 어떤 양상으로 반영되어 나타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기획의 초점이다.

가장 눈에 띄는 출품작은 영국에서 유학한 40대 작가 이세현씨와 스타작가 정연두씨의 신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비트윈 레드-99>란 작품에서 동양 전통 그림의 원근법인 3원법에 바탕한 붉은색 산수를 풀어놓은 뒤 그 위에 핵폭발, 거북선 등의 군함, 땅을 개발하고 파괴하는 참상들을 그려 넣고 있다. 넓게는 현대 문명, 가깝게는 현 정부의 4대강 개발 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해석의 여지를 폭넓게 열어놓은 문제작이다. 정연두의 설치 영상 <식스포인트>는 다민족 사회인 미국 뉴욕의 6개 나라 정착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인도, 중국, 한국계 등의 소수 민족 사람들이 각기 그 나라 말과 기묘하게 버무려진 영어로 자기네 삶을 소개하는 이 영상에서 미국이면서도 미국이 아닌 인공 다민족 사회의 단면들이 드러난다.


이용백 작 ‘피시블루’
이용백 작 ‘피시블루’
다른 작가들도 신작은 아니지만 무기력한 판타지나 신경증적 강박에 몰입하는 현재 한국 미술계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다. 이용백씨의 유화 <피시블루>는 물고기 모양의 가짜 낚시 미끼를 정밀하게 그린 그림이다. 알록달록한 화려한 색채를 입힌 이 가짜 물고기는 진짜 물고기를 포획하려는 날카로운 미늘을 감추고 있는데, 포장된 외양 이면에 가혹한 경쟁의 생리를 숨긴 우리 사회의 실상을 은유한다. 전시포스터 이미지로도 나온 진기종씨의 설치작업 <디스커버리 채널>은 허접한 소품에 재현된 달 착륙 장면이 조작을 거쳐 그럴싸한 착륙 장면으로 만들어지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미지 조작과 가상 세계가 만연한 우리 시각 문화를 꼬집는 작품이다. 디자이너 겸 작가인 최정화씨는 형형색색의 싸구려 장식 재료를 써서 전시장 입구에 주련을 매달거나 들머리 커피숍을 키치 디자인으로 덮은 작업들을 선보인다.

기획자 윤재갑씨는 “이 전시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라며 “담론이 무너지고 신자유주의에 의해 투기장처럼 변한 한국의 사회상을 겉포장만 요란한 인공 공원으로 가정하고 이에 대한 작가들의 열패감, 허무감 등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상하이 민생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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