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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몸짓이 주는 슬픔엔 국경이 없었다

등록 2010-08-23 20:30

호주 다윈 페스티벌 간 ‘시계 멈춘 어느날’
호주 다윈 페스티벌 간 ‘시계 멈춘 어느날’
호주 다윈 페스티벌 간 ‘시계 멈춘 어느날’
극단 사다리의 어린이 무언극
‘전쟁 반대’ 메시지 큰 박수받아
시드니 등 장기 국외공연 예정

지난 21일 저녁 6시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북쪽 끝 항구도시 다윈 시내의 엔터테인먼트센터 스튜디오 시어터에 한국에서 온 낯선 어린이 연극을 보기 위해 어린이, 청소년, 학부모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매년 8월 말 열리는 이곳의 대표적 공연축제인 다윈 페스티벌에 올해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참가한 어린이 공연 전문 극단 사다리(대표 정현욱, 예술감독 유홍영)의 창작극 <시계 멈춘 어느 날>이 무대에 오른 것.

<시계 멈춘…>은 국제연합아동기금(유니세프)이 옛 유고 내전 당시 부상당한 어린이들의 글과 그림을 묶어 1993년 발간한 <나는 평화를 꿈꿔요>를 김민정 연출가와 배우들이 읽고 2004년 연극으로 구성한 작품. 20일 오전 첫 공연 때는 관객이 30명에 불과했으나 공연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날은 관객이 150여명으로 불어났다.

극은 바이올린의 슬픈 선율과 함께 막을 올렸다. 배우 임우철(36), 이주원(36), 이정화(34), 구현아(39)씨가 전쟁을 맞은 한 신혼부부의 비극적 이야기를 무언극으로 풀어나갔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은 전쟁터로 끌려가고 아내는 피난길을 떠나는 고된 여정이 우스꽝스런 마스크와 마임, 영상으로 버무려진 7개 장면으로 풀려나왔다. 남자는 전쟁을 거부하다 죽임을 당하고, 피난길에 나선 아내는 꽃과 새와 물고기와 버려진 아이를 싸안고 방황하다 지쳐 쓰러져 숨진다. 특히 남편이 전쟁터에서 한 소년을 구해 빵을 먹이려다 소년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과 아내가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꾸다 지쳐 숨지는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50분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다. 몇몇 어린이 관객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생명나무에 새싹과 새, 꽃, 물고기를 붙이면서 곰곰 연극의 의미를 생각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들은 배우들에게 다가가 “마스크 뒤에도 슬픈 표정이나 행복한 표정을 짓느냐?” “다른 나라 아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슬픔을 느꼈느냐?”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다윈중학교 1학년이라는 컬럽(12)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슬프고 아름답게 보여주었다”며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학부모 페터는 “내 아이가 항상 이 연극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꼭 보아야 할 작품”이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배우 이주원씨는 “지구 반대쪽의 이곳 사람들 역시 전쟁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극에 공감하는 것을 보면서 ‘모두의 마음은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뻐했다.


다윈 축제에서 잔잔한 화제를 모은 <시계 멈춘 어느 날>은 앞으로도 한달여 동안 오스트레일리아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초청으로 25~28일 오페라하우스 중극장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을 펼친다. 한국 연극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오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다음달 20~21일에는 애들레이드 오즈 아시아 페스티벌에서 초청공연되며, 11~12월에는 일본 투어에도 나설 예정이다.

다윈 페스티벌은 1974년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본 다윈을 시민들이 재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79년부터 시작한 공연예술축제다. 올해 축제는 다윈 엔터테인먼트센터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시내 곳곳에서 시각예술 전시, 퍼레이드, 콘서트, 워크숍 등 70여개의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다윈/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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