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에서 본 황남대총 특별전 전시장 정면. 발굴 당시 남쪽 봉분에서 확인된 거대한 묘실 목곽 구조를 재현한 대형 나무 구조물과 그 내부에 패널 사진 등으로 복원한 주곽, 부장품곽의 모습 등이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황남대총 특별전 가보니
국내 최대 쌍무덤 발굴 36년 결산
재현 구조물 부실·학계논의 미반영
‘스토리텔링’ 빈약…단편적 나열 “저게 제일 큰 무덤인가… 한번 발굴해보지그래.” 1970년대 초 경주에 들렀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황남동 들판에 솟은 거대한 쌍무덤(쌍분·아래 사진)을 보고 불쑥 지시를 던졌다. 그가 가리킨 무덤은 남북 길이 120m에 높이가 20m를 넘는 국내 최대 쌍무덤 ‘황남대총’이었다. 경주관광개발 계획을 구상중이던 그는 치세중에 금관 같은 기념비적 유물을 발굴하려는 야심에 차 있었다. ‘왕릉을 파헤치지 말라’는 시민들 반대 속에 발굴이 강행됐다. 1973~1975년 연인원 3만명 이상을 동원한 문화재관리국의 조사는 고대 신라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관을 싼 덧널 위에 돌무더기를 쌓은 5세기께 무덤 속에서 순금제 금관과 서역제 로만글라스 병, 비단벌레 장식 마구, 금은제 그릇·장신구 등 5만점 이상의 유물들이 쏟아졌다. 고고학자들의 로망인 거대 유적의 스펙터클이 이 땅에도 출현한 것이다. 이 왕릉 급 무덤의 주인, 신라 황금 문화의 실체, 숱한 서역 유물들의 전래 경로 등을 놓고 숱한 수수께끼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후속 연구는 더뎠고, 제대로 된 유물 전시도 열리지 않았다. 마침내 발굴 36년을 넘긴 올해 황남대총 발굴을 결산하는 특별전이 사실상 첫막을 올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에서 7일부터 시작한 특별전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 황남대총’은 한국 고고학 최대의 발굴로 꼽히는 황남대총 출토 유물들을 집대성한 전시다. 5만8441점이나 되는 출토품 가운데 금관 등의 귀금속 장신구와 그릇들, 서아시아산 유리그릇 등 신라 황금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물 1286점이 한자리에 모여 공개됐다.
발굴 뒤 첫 종합전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정작 전시의 실체는 평범한 신라 황금유물전에 더 가깝다. 황남대총 개설서는 물론, 관련 논문도 10편에 못 미치는 학계의 연구 실상을 여실히 반영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풍성한 수수께끼를 간직한 이 고분의 ‘스토리텔링’에 충실하지 않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전시장 들머리에서 관객을 맞는, 황남대총 내부의 거대한 묘실 얼개를 재현한 대형 구조물은 실패작에 가깝다. 대형 나무 뼈대 안에 덧널 속 부장품 창고와 주검을 안치했던 주곽을 원형 크기로 재현했지만, 그 내용물은 무덤 내부를 찍은 흐릿한 패널 사진으로 대부분 채워져 현장감이 떨어진다. 무덤 구조를 한눈에 보여주는 축소 미니어처 모형도 없고 핵심 출토품인 금관과 가슴 장식 등도 거대 구조물 뒤편에 전시되어 한눈에 유적의 독특한 얼개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학계에서는 현재 이 무덤의 주인이 내물왕인지, 눌지왕인지 등을 놓고 수십년째 논란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이 논란을 비롯한 ‘황남대총 수수께끼 시리즈’의 흥미로운 전말을 충분히 짐작해보기는 어렵다. 금관을 비롯한 각종 황금 장신구와 귀금속 합·그릇, 서역제 로만글라스 그릇들은 중국 문화와 다른 중앙아시아적 요소가 짙은 유물들인데, 전래 경로를 둘러싼 미스터리나 학계의 논의 내용, 다른 지역 연관 유물 등의 소개·전시가 빈약한 모습도 눈에 걸린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의 한 관계자는 “올 하반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의 큰 국제 행사를 앞두고 한정된 인력으로 급하게 전시를 기획하다 보니, 학계 전문가들과 제대로 교감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10월31일까지 펼쳐질 이 미완의 전시는 연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간다. 지금 전시보다 훨씬 많은 출토품을 추가해 황남대총의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이영훈 관장은 밝히고 있다. (02)2077-90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재현 구조물 부실·학계논의 미반영
‘스토리텔링’ 빈약…단편적 나열 “저게 제일 큰 무덤인가… 한번 발굴해보지그래.” 1970년대 초 경주에 들렀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황남동 들판에 솟은 거대한 쌍무덤(쌍분·아래 사진)을 보고 불쑥 지시를 던졌다. 그가 가리킨 무덤은 남북 길이 120m에 높이가 20m를 넘는 국내 최대 쌍무덤 ‘황남대총’이었다. 경주관광개발 계획을 구상중이던 그는 치세중에 금관 같은 기념비적 유물을 발굴하려는 야심에 차 있었다. ‘왕릉을 파헤치지 말라’는 시민들 반대 속에 발굴이 강행됐다. 1973~1975년 연인원 3만명 이상을 동원한 문화재관리국의 조사는 고대 신라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관을 싼 덧널 위에 돌무더기를 쌓은 5세기께 무덤 속에서 순금제 금관과 서역제 로만글라스 병, 비단벌레 장식 마구, 금은제 그릇·장신구 등 5만점 이상의 유물들이 쏟아졌다. 고고학자들의 로망인 거대 유적의 스펙터클이 이 땅에도 출현한 것이다. 이 왕릉 급 무덤의 주인, 신라 황금 문화의 실체, 숱한 서역 유물들의 전래 경로 등을 놓고 숱한 수수께끼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후속 연구는 더뎠고, 제대로 된 유물 전시도 열리지 않았다. 마침내 발굴 36년을 넘긴 올해 황남대총 발굴을 결산하는 특별전이 사실상 첫막을 올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에서 7일부터 시작한 특별전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 황남대총’은 한국 고고학 최대의 발굴로 꼽히는 황남대총 출토 유물들을 집대성한 전시다. 5만8441점이나 되는 출토품 가운데 금관 등의 귀금속 장신구와 그릇들, 서아시아산 유리그릇 등 신라 황금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물 1286점이 한자리에 모여 공개됐다.
황남동 들판에 솟은 거대한 쌍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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