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제임스 전 부부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제임스 전 부부
“15년 전에 저희가 아이를 낳아서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는 기분이죠. 조금은 마음이 놓이지만 ‘이 아이가 사회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잘 자랄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김인희)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신이 없습니다. 또 앞으로 15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도 되고요.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많이 좋아지고 G20까지 되었지만 ‘문화가 그 정도까지 올라가 있느냐?’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도 다른 분야에 못지않게 훌륭하게 발전해야 하는데 우리 문화환경이 그런 준비가 되었느냐는 것이죠.”(제임스전)
창작·소품 발레 100편 선봬
“시련 견뎌준 단원들께 감사”
창단기념 운현궁서 무료공연
서울발레시어터(SBT)가 올해로 창단 15주년을 맞았다. 1995년 순수민간발레단을 만들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예술성 있는 창작 발레’와 ‘발레 대중화’, ‘우리 발레의 해외진출’의 꽃을 피워온 김인희(47·단장)-제인스 전(51·상임안무가 겸 예술감독) 부부에게 지난 15년 세월은 또 다른 감회로 다가온다.
두 사람은 가장 먼저 “수많은 어려움을 잘 극복해준, 우리가 동지라고 부르는 우리 단원들에게 너무 감사 드린다”고 감회를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15년 동안 저희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주변 분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서울발레시어터가 없었을 것”이라며 지인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서울발레시어터의 지난 15년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국립발레단, 통일교 재단이 후원하는 유니버설발레단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었다.
“다달이 월급날인 25일을 전후로 해서 일주일이면 저는 숫자를 맞출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런 일을 조마조마하며 15년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할 일이고, 또 서울발레시어터가 살아남아서 후배들에게 성공사례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텨왔습니다.”
김인희 단장의 고백에 남편 제임스전도 한마디 거든다.
“문화는 다양한 색깔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민간단체가 많아야지만 경계심과 경쟁력이 생길 수 있잖아요. 발레도 순수하게 고전발레를 하는 단체도 있어야 하는 반면에 또 저희와 같이 ‘이상한’ 실험적인 단체도 필요한 거죠. 앞으로 저희도 열심히 하겠지만 저희와 같이 창작발레를 하는 민간발레단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발레계의 소문난 ‘잉꼬부부’인 두 사람은 87년 5월 유니버설발레단의 <고집쟁이 딸>과 <티어 탄츠> 공연을 함께하며 처음 만나 89년 3월 부부의 연인을 맺었다. 그 당시 김인희 단장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쳐 유니버설무용단 수석무용수로 한창 날리던 때였고, 제임스전은 미국 줄리아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제임스전은 “독신을 고집했는데 프리마 발레리나인데도 몹시 소탈한 김인희가 눈에 들어왔다. 뉴욕에서 엄청난 국제전화비를 들여가며 프러포즈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러자 김 단장도“제임스전은 생긴 것은 별로였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솔리스트든지 군무이든지 무대에서 보여주는 에너지와 열정이 한결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제임스전의 미국 친구들 사이에 ‘제임스가 결혼했다’, ‘그것도 여자가 결혼했다’, ‘한국 여자와 결혼했다’, ‘한 여자와 20여년을 살고 있다’는 게 몇대 불가사의로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김 단장이 결혼 전에 제임스전에게 “내가 발레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줄 수 있겠느냐>, 내가 월할 때까지 발레로 먹여살려 줄 수 있겠느냐?”라고 내건 조건이 두 사람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 뒤로 김 단장은 국립발레단 수석 발레리나로 자리를 옮겼고, 제임스전도 세계적인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와 유니버설발레단을 거쳐 아내와 함께 94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하며 ‘부부 발레스타’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라는 영예도 이들의 ‘발레 대중화’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마침내 두 사람은 1년 만에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박차고 나와서 1995년 2월 국내 최초의 민간 직업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해 발레계를 놀라게 했다.
어린 서울발레시어터에게 현실은 냉혹했다. 창단한 지 3년 만인 98년에, 그것도 사단법인을 만들자마자 아이엠에프로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2000년에는 예술의전당에 상주단체로 들어갔다가 뜻하지 않게 국립단체들과 동거하면서 공연제약 때문에 2년 만에 빈털터리로 쫓겨나와야 했다. 단원들에게 6개월 동안 휴가를 주고 두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새 보금자리를 찾은” 것이 지금의 과천 시민회관이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전 세계에 몰아닥친 금융위기와 신종플루로 또 한번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객석 점유율이 50%도 안되어서 제임스전에게 이제는 쉬자고 했어요. 거의 90%를 접었는데 전 직원들이 비상회의를 해서 ‘쥐꼬리 같은 월급을 30% 줄이겠다’, ‘1년간 고생하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될 수 있다’고 자료를 가지고 찾아왔어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자식들이 집안을 살려보겠다고 나서니까 엄마로서…”
김 단장이 말하다 말고 목이 메인다. 그러자 제임스전이 “지난해 피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발레단 15년 만에 작으나마 흑자를 보았다. 순수한 민간단체로는 전 세계에도 유례 없는 사례인 것 같다”고 아내를 다독거렸다.
두 사람은 단장 김인희-상임안무가 제임스 전이라는 쌍두마차 체제로 발레단을 이끌면서 <현존>(1998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2000년), <코펠리아>(2007년) 등 전막 창작발레 10편과 <손수건을 준비하세요>(1996년), <백설공주>(2003년) 등 창작 소품발레 90여 편을 선보였다. 또 수십 차례 해외 공연을 펼치며 한국 발레의 존재를 알려왔다. 2001년에는 미국 네바다발레단에 제임스전이 안무한 <생명의 선>을 개런티를 받고 팔며 수출하는 성과도 얻었다.
두 부부는 아이가 없다. 15년 동안 쌓인 수억원의 빚 탓이기도 하지만 창단할 때 단원들에게 “최고의 연봉을 줄 수 있는 발레단을 만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서울발레시어터는 10~11일 저녁 오후 8시 운현궁 야외무대에서 창단 15년 기념 공연으로 ‘궁, 발레랑 노닐다’를 무료로 펼친다. 서울발레시어터의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고 로이 토비아스의 작품 <마음속 깊은 곳에>를 비롯해 제임스 전이 안무한 <도시의 불빛>, <희망>, <1*1=?‘>, <생명의 선>, <춤을 위한 탱고>, <현존> 등 창작발레 7편이 갈라 형식으로 선보인다. 또 국립발레단의 스타 무용수 김주원씨와 김현웅씨가 창작발레 <왕자 호동> 중 ‘사랑의 파드되’로,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황혜민씨와 엄재용씨가 창작발레 <심청> 중 ‘문 라이트 파드되’로 대선배들을 위한 축하무대를 꾸민다. 이번 공연 관람료는 무료며 공연 한 시간 전에 입구에서 좌석권을 배포할 예정이다 (우천시에는 공연 취소). (02)3442-2637.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시련 견뎌준 단원들께 감사”
창단기념 운현궁서 무료공연
9일 열린 ‘궁, 발레랑 노닐다’의 리허설에서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이 초대 예술감독 고 로이 토비아스의 작품 〈마음속 깊은 곳에〉를 공연하고 있다.
“문화는 다양한 색깔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민간단체가 많아야지만 경계심과 경쟁력이 생길 수 있잖아요. 발레도 순수하게 고전발레를 하는 단체도 있어야 하는 반면에 또 저희와 같이 ‘이상한’ 실험적인 단체도 필요한 거죠. 앞으로 저희도 열심히 하겠지만 저희와 같이 창작발레를 하는 민간발레단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발레계의 소문난 ‘잉꼬부부’인 두 사람은 87년 5월 유니버설발레단의 <고집쟁이 딸>과 <티어 탄츠> 공연을 함께하며 처음 만나 89년 3월 부부의 연인을 맺었다. 그 당시 김인희 단장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쳐 유니버설무용단 수석무용수로 한창 날리던 때였고, 제임스전은 미국 줄리아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제임스전은 “독신을 고집했는데 프리마 발레리나인데도 몹시 소탈한 김인희가 눈에 들어왔다. 뉴욕에서 엄청난 국제전화비를 들여가며 프러포즈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러자 김 단장도“제임스전은 생긴 것은 별로였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솔리스트든지 군무이든지 무대에서 보여주는 에너지와 열정이 한결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제임스전의 미국 친구들 사이에 ‘제임스가 결혼했다’, ‘그것도 여자가 결혼했다’, ‘한국 여자와 결혼했다’, ‘한 여자와 20여년을 살고 있다’는 게 몇대 불가사의로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제임스전이 안무한 전막 발레 〈코펠리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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