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만 떠들썩…문제 작가 발굴엔 미흡
한국은 3대 비엔날레를 비롯해 아시아권에서 가장 많은 비엔날레가 열리는 나라다. 국내 미술인들은 이에 대체로 냉소적 반응을 보여왔다. 2000년대 이래 지자체 입김이 커지면서 과시적 이벤트 중심으로 바뀌고 있고, 2006년 신정아 파문처럼 기획자 감투를 둘러싼 추문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기획자들의 참여로 유례없이 많은 국내외 미술인들이 몰려든 올해 비엔날레들은 눈길 끌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 미술판을 위한 실익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판은 떠들썩했어도 문제 작가의 발굴이나 미술판의 새 흐름을 제시한다는 본령은 묻힌 감이 뚜렷하다. 서구 기획자와 미술변방인 아시아권 기획자들 사이에서 전시를 꾸려내는 역량의 차이 또한 도드라졌다.
가장 월등한 집중력을 보여준 건 세계적인 기획자 마시밀리아노 조니가 포진한 광주 전시였다. 조니는 비엔날레 재단의 전폭적 지원 아래 꿈꾸던 가상의 이미지 미술관을 차렸다. 고은의 시 ‘만인보’를 이미지 집착의 역사를 엿보는 기획전 주제에 덧붙인 이 전시는 자료 중심 기획전과 다를 바 없어, ‘비엔날레의 황혼’을 알리는 레퀴엠(위령곡)처럼 비쳤다. 테디 베어 인형을 갖고 찍은 세계인들의 기념사진 3천여장으로 2층 전시공간을 채운 이데사 헨델레스의 작품처럼 조니는 일반인들이 간직한 이미지와 옛 거장 수작들 중심으로 기억의 전시장을 꾸려냈다. “연출이 아니라 관객 움직임까지 감안한 안무를 했다”는 조니의 말처럼 전시는 잘 직조된 그만의 작품이었다. 반면 미술인들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의도적으로 무시당한 듯한 얼개에 불편해했고, 비엔날레 정체성은 무엇일까라는 의문도 낳았다. 공공성을 팽개쳤다는 비난 속에 재단 쪽이 돈을 대가며 차린 국제 미술품 장터인 아트 광주는 썰렁하게 막을 내렸다. 조직위 쪽은 42억원의 매출액(추산)을 발표했지만, 상당수 참여 화랑은 개점 휴업 상태를 면치 못했다. 영국 유명 화랑인 리슨 갤러리는 부스 문을 아예 닫아건 전시 콘셉트를 내세워, 사실상 부스 안 거래를 포기하며 참가했다는 생색만 냈다.
김선정씨가 기획한 미디어시티 서울과 일본 기획자 아즈마야 다카시가 기획한 부산비엔날레는 기획력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첨단 테크놀로지 비중을 덜고 ‘신뢰’라는 인문적 주제를 강조한 미디어 시티는 구작들이 많았고, 주제와 결부되는 작품들의 흡인력도 떨어졌다는 혹평을 받았다. 한국의 사회 현실을 그로테스크한 제의적 설정으로 색다르게 조명한 김성환, 임민욱씨 등 젊은 영상 작가들의 근작들과 세계적인 영상 작가로 떠오른 아피찻퐁의 대표작들을 보았다는 정도가 위안이 될 듯하다.
부산비엔날레는 자료전 성격이 뚜렷한 다른 비엔날레와 달리 현대미술 개념에 맞는 역동적인 설치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진화 속의 삶’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담기에는 작품 구성의 밀도감이 떨어지며 개별 작품들을 기획자가 충실히 이해했는지 의문스럽다는 반응들도 나왔다. 체온만큼 덥혀진 금속통을 설치한 일본 작가 무라오카 사부로의 <체온> 등 일본 작가들의 섬세한 작업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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