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주경기장 한가운데 잔디밭에 놓인 서울디자인한마당의 3대 파빌리온 전경. 왼쪽부터 문화디자인관과 서울디자인관, 도시디자인관(위).
‘서울디자인한마당’ 돌아보니
25개 자치구·지역민 참여
어수룩하지만 진정성 담아
25개 자치구·지역민 참여
어수룩하지만 진정성 담아
17일부터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개막한 서울시의 서울디자인한마당 2010의 주요 전시장은 컬트쇼 무대 같았다. 거장 김수근이 설계한 주경기장 스타디움은 기괴하고 코믹한 느낌을 주는 대형 설치 작품의 배경으로 변했다. 명망있는 국내외 디자인 대가들이 만든 전시관 3동이 잔디 운동장 한가운데를 제왕들처럼 차지했고, 1층 스탠드는 공무원과 보통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뽑아낸 그로테스크 디자인이 뒤섞인 녹색 정원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없고 잡동사니 조형물이나 식물 화분들이 스탠드 객석을 메운 광경은 유령처럼 묘한 부재감을 느끼게 한다.
반면 스탠드 안쪽 통로에 가득 들어찬 디자인 마켓이나 푸드 디자인 등의 전시장 일부는 떠들썩한 장터 분위기도 난다. 복잡미묘한 디자인 잡화점 분위기다.
디자인한마당은 2008년부터 매년 서울시가 디자인 경쟁력을 외치며 벌여온 디자인올림픽의 이름을 바꾼 행사다. 100억원 이상을 펑펑 쓰던 예산도 70억원대로 줄이고 ‘모두가 함께하는 디자인’이란 올해 주제처럼 시민 위주 행사를 만들겠다며 준비했다. 시 쪽은 김수근이 디자인한 백자 모양의 스타디움을 서울 도성 혹은 서울을 감싸는 진산으로 보고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주제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브랜드전과 국제자전거디자인 페스티벌, 국가 테마전 등이 안팎에 들어찬 경기장 일대를 돌아다녀보면, ‘후진 재미’를 주는 볼거리들이 뜻밖에도 넘친다.
압권은 서울 25개 자치구청이 내놓은 각양각색의 녹색 정원이다. 구청 공무원들이 관할 내 디자인 전공 교수, 대학생, 지역민들과 합심해 1층 스탠드를 빙 둘러 구청별로 영역을 갈라놓고, 독특한 디자인 콘셉트 정원을 꾸민 것인데, 공공디자인 상상력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업들이 많다. 플라스틱 컨테이너들을 쌓아 동대문의 모습을 레고 블록처럼 형상화해 세운 동대문구 상징물, 깡통 캔·포장지·스티로폼 등의 폐기물을 좌대에 세운 뒤 그 아래쪽에 버들가지처럼 실을 흩날리게 한 용산구의 그린비 조형물, 예술을 누리는 즐거움에 흥겨워하는 구민을 상징했다는 서초구의 춤추는 두꺼비상, 서대문구의 홍제천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상 등이 시선의 허를 찌른다. 애초의 생태적 성격과 달리 어수룩하면서도 대담한 진정성도 있는 관변 디자인의 가설극장처럼 보이는 프로젝트다.
가식의 압박감이 느껴지는 건 운동장의 세 파빌리온(임시 전시장)들이다. 산 정상처럼 삐죽 솟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멘디니의 서울 디자인관(라푼타)을 중심으로 납작한 본체에 나비를 모티브로 화합과 조화를 나타냈다는 리베스킨트의 문화디자인관, 건축가 김석철씨의 천지인을 표현한 도시디자인 관은 잡동사니 장난감을 흩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파빌리온 전시는 각기 전시주제가 다른데, 한참 보다 보면 내건 주제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게 된다. 특히 목가구, 수선전도 등 서울의 옛 디자인 자산 51점을 삼성, 엘지의 휴대폰, 인테리어 전시장과 뒤섞은 서울디자인관 전시가 그렇다. 최경란 전시총감독은 “간판인 파빌리온 전시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기업 후원 등으로 메워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예산 낭비에 작품이 조악하다는 지탄을 받은 2008년, 2009년 디자인 올림픽에 비해 이번 전시는 면적도 줄이고 정제된 느낌도 준다. 기획자가 무엇을 의도했든 서울시 공무원들과 보통사람들의 디자인 감각을 솔직하게 드러냈기에 나름 의미를 발산한 전시라는 평도 나온다. 서울시 쪽은 2012년부터 디자인한마당을 격년제 비엔날레로 연다고 추석 직전 발표했다.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에 뒤이어 한국은 보기 드물게 관제성 디자인 비엔날레를 두개나 여는 나라가 됐다.
글ㆍ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서울디자인한마당의 녹색 정원 프로젝트에 나온 서울 각 구청의 디자인 정원 출품작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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