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노해(53)씨
두번째 전시회…10여년 작업 모은 사진집 출간
“발바닥에 깃든 영혼이 가자고 하는 대로 현장을 돌며 찍었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으로…”
<노동의 새벽>의 시인 박노해(53·사진)씨는 지난 10여년간 찍은 사진들 앞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 소외지대와 그곳 사람들 삶을 찍은 크고 작은 작품들이었다. 그의 두번째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이 열리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막 전날인 6일 시인을 만났다. 그는 “13만장 넘께 찍은 사진 작업이 시 쓰기를 방해하지 않을까 싶어 너무 두려웠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빛으로 시를 쓰나 만년필로 시를 쓰나 똑같더라”고 했다.
‘세계의 진실’을 담았다는 출품작 120여점은 전란·가난에 시달리는 분쟁지역과 산간·사막 등 오지 사람들의 오뚝이 같은 삶, 따뜻한 삶터의 풍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인은 주요 출품작들을 짚어가며 한참을 설명했다. 우정·축복·평화의 커피잔을 나누는 에티오피아 가정의 ‘분나 세리머니’, 옥수수술을 마시며 품앗이하는 안데스 농부들, 터키 경찰의 감시를 피해 한밤에 시인 앞에서 몰래 펼친 쿠르드족 아이들의 환영 공연 등을 담은 컷들이 그의 열변과 함께 지나갔다. 지난해 12월 중동 사진들로 채운 첫 사진전 ‘라 광야’의 출품작들에 다른 지역 사진들을 합쳐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사진집 출간과 더불어 10여년 사진 작업을 총결산하는 자리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결성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가 1998년 석방된 시인은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세운 뒤 해외 평화활동을 벌여왔다.
“저는 실패한 혁명가였지요. 길을 잃고 절망하고 있을 때 저보다 깊은 상처를 지닌 채 세계 가장 낮은 곳에서 힘든 노동으로 인류를 떠받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됐어요. 똑딱이 카메라 들고 국경 넘어 전쟁터와 가난, 소외의 현장들을 돌기 시작했어요. 아픈 부위가 우리 몸의 중심이 되듯 세계화의 모순이 내리꽂힌 역사의 현장이 바로 세계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죠.”
그는 아직도 사진에 관한 한 “빛 조절도 못하는” 아마추어다. 찍은 사진들 또한 35㎜ 흑백 필름 카메라로 단순하게 앵글을 잡은 아날로그 작업들이다. 그러나 시인은 충만한 시의 마음으로, 혁명의 본질이자 지향점인 인간에 대한 애착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말한다. “전시 수익금은 나눔문화의 활동 대상인 난민촌 등의 학교나 도서관, 식수 지원 등에 쓸 생각”이라는 시인은 그동안 꾹꾹 눌러쓴 시 5000편을 간추린 새 시집도 곧 출간한다고 귀띔해주었다. 25일까지. (02)734-1977.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