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의 신부 홍신자 하늘연못에서 신랑을 맞다
제주 자연·예술 어우러진 혼례
“남북 만남·동서 결합 의미해”
“남북 만남·동서 결합 의미해”
청명한 제주의 가을 하늘 아래 칠순의 신부를 맞는 한살 연하 신랑의 입가가 귀밑에 걸렸다. 지난 9일 오후 제주도 돌문화공원의 하늘연못가에서 세계적 무용가 홍신자(오른쪽)씨를 신부로 맞이하는 신랑 독일 출신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한양대 석좌교수), 전날 저녁까지 내리던 비를 걱정했던 그는 “하늘마저도 우리를 돕는 것 같다”며 연신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었다. 신부 홍씨도 “하늘도 좋은 날이라는 걸 아시나 보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날 오후 ‘홍신자 시집가는 날’이란 이름으로 열린 결혼식은 공연과 예식이 어우러진 한편의 퍼포먼스였다. 오후 4시 제주대 금관 5중주단의 라이브 음악에 맞춰 홍씨가 이끄는 ‘웃는돌 무용단’의 권영임·김유진씨가 하늘연못 위에 소국·쑥부쟁이·으아리 꽃잎을 뿌리며 식이 시작했다. 이어 “와~” 환호와 함께 한복디자이너 김영진(차이아르테 대표)씨가 지은 흰색(소색) 한복을 차려입은 신랑과 신부가 양쪽에서 하늘연못을 건너와 만났다. “동과 서의 만남이면서 두 분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자연과 예술, 사랑이 아주 조화롭게 꽃핀 환상적인 공연이었어요.” 이날 사회를 본 송순현 정신세계원 대표는 “한글날이어서 더 의미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본격적인 혼례식은 오후 5시30분부터 서도소리 명창 박정욱(국악예술원 가례헌 대표)씨의 주례로 진행됐다. 신부는 전통 평양식 혼례복을 입고 비단으로 감싼 4인교를 타고 입장했고 신랑은 제주 말 ‘태풍’을 타고 잔디마당에 등장했다. 특히 백발의 신랑이 끙끙대면서 신부를 업고 한바퀴를 돌자 재독화가 노은 화백과 사진작가 베르나르 크루거, 최홍규 쇳대박물관장, 디자이너 진태옥·한애자씨, 신갑순 삶과꿈 발행인 등 하객들은 박장대소로 흥을 돋웠다.
“이왕 결혼을 하는 것이니까 멋있게 성의 있게 하고 싶었어요. 특히 비워내고 채워내도 끝나지 않는 설문대 할망의 헌신과 이해, 그리고 순환과 연속된 사랑을 뜻하는 하늘연못에서 결혼을 하게 되어 몹시 행복합니다.”(신부) “두달 전에 독일 헤센의 옛 성 부르크 슈타우펜베르크에서 가족끼리 상견례 모임을 했는데 오늘 제주도에서 전통 평양식으로 결혼하니까 더 의미가 새롭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기쁘지만 남과 북의 만남이자 동과 서의 결합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신랑)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한 미술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뒤 몇 차례의 여행을 함께하면서 급속히 가까워져 지난 4월 사세 교수가 살고 있는 전남 담양의 목조 기와 한옥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제주/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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