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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겉만 봐선 모르잖아요, 사람도 인생도…

등록 2010-10-20 09:25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
‘외모주의’ 풍자 희극고전
현대적 캐릭터로 재해석
안석환·김선경 등 캐스팅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

그는 당대의 빼어난 시인이자 최고의 검객에다 철학자, 음악가였다. 이 완벽한 주인공에게도 치명적인 흠이 있었으니 바로 얼굴 한가운데 길쭉하게 늘어진 코. 그 코가 얼마나 황당무계했으면 코가 술잔 속에 헤엄을 치고, 콧구멍으로 술 마시고, 앵무새가 앉아 노래를 부르고, 옷걸이로 안성맞춤이라는 비웃음을 살 정도라니!

꽃미남, 꽃미녀에 목매는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는 프랑스 낭만 희극의 고전 <시라노 드 베르쥬락>이 22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요즘 한창 인기 높은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바로 이 작품에서 이름과 모티브를 따왔다. 1990년 제라르 드파르디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유명해졌다.

‘잘생긴 것들’을 선호하는 추세는 오늘이나 17세기나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시라노는 추한 외모 때문에 어릴 적부터 흠모해온 먼 친척 여동생 록산느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는 록산느를 사랑하는 잘생긴 근위대 청년사관 후보생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연애편지를 써주면서 지켜보다가 마침내 죽음의 순간에 진실을 밝힌다.

연출가 김철리(57·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씨는 이 유명한 고전에 오랫동안 매달려왔다. 1992년 이 작품으로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았고, 2005년 다시 연출한 데 이어 5년 만에 세 번째 연출에 나섰다. 주인공 시라노는 영화와 텔레비전, 연극을 누비는 개성파 연기자 안석환(51)씨, 록산느는 인기 뮤지컬 배우 김선경(42)씨를 기용했다. 대학로의 ‘꽃미남’으로 꼽히는 이명호(40)씨가 크리스티앙을, 전진기(44)씨가 드기슈 백작을 두 번째 맡아 그와 함께한다.

지난 주말 서울 약수동 뮤지컬하우스 연습실에서 만난 김 연출가는 “인물들에 대한 편견을 깨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가장 먼저 새로운 스타일로 바꾸려고 마음먹은 캐릭터는 오히려 록산느였다고 한다. 순수의 화신이었던 록산느가 이번에는 순수하면서도 발랄하고 성숙한 여자로 재해석됐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100퍼센트 시골 여자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좀 발랄해져야 해요. 연애라는 것은 아무리 순수해도 내숭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김선경씨를 선택했습니다.” 록산느 역의 김선경씨는 “처음에는 한번에 사랑에 빠질 정도로 철이 없는 소녀가 점점 성숙한 여자로 변해가는 모습을 확실한 색깔로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을 보탰다.


시라노 역의 안석환씨는 “처음 대본을 받아 읽는데 요즘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시라노의 숭고한 사랑에 눈물이 다 나더라”고 털어놓았다. 요즘 영화 <사랑이 무서워> 촬영에, 텔레비전 드라마 <대물>과 <매리는 외박중> 출연까지 정신없이 바쁜데도 “좋은 작품의 매력 있는 배역에 캐스팅되어 행복하다”고 밝게 웃었다.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발표한 작품이다. 외면보다 내면의 가치를 강조하는 숭고한 짝사랑의 이야기 속에 엇갈린 운명, 오해가 빚어낸 우스꽝스러운 상황, 개인과 사회의 편견 등이 유쾌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러면서 깊고 진지한 울림을 던진다. 겉을 보고서는 인생을 알 수 없다는 것, 그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진리가 김 연출가가 이 작품에 매달리는 동기이다.

“순수한 사랑이란 주제보다는 우리가 타인의 진심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는 문제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그 진심이란 것이 왜곡된 시각 때문에 잘 드러나지도 못하잖아요?”

11월14일까지, 1644-2003.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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