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혜중공업’ 신작전
텍스트와 소리·이미지 혼합
예술가의 불안한 내면 표현
예술가의 불안한 내면 표현
웹아트 2인조 그룹 ‘장영혜중공업’ 신작전
“좀 도와줄래? … 난 헤매고 있어, 지쳤고 비참하고 무력해….”
길 잃은 이의 절박한 외침이 왜 이리도 발랄하게 들리는 걸까. 그들은 육성 대신 컴퓨터 화면으로 절규한다. 웹 화면에서 방정맞게 움찔거리는 알파벳 문장들이 음성이 된다. 구체적인 이미지는 없고 인터넷 특유의 모나코체 영자와 한글 글자로 생각과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아버린다. 그 시선 사이사이로 그들이 직접 연주하는 타악 퍼커션이 끼어든다. ‘이국적인 음식, 매력적인 제안’ ‘그는 술에 쩔었다’ ‘실패’ 같은 연결되지 않는 영어, 한글 문장들이 펄쩍펄쩍거리는 화면, 북소리, 알 수 없는 마찰음…. 무슨 메시지인지 짐작조차 힘들지만, 볼수록 비장한 애조가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웹아트를 공장처럼 찍어낸다는 2인조 그룹 ‘장영혜중공업’(최고경영자는 여성 작가 장영혜씨, 2인자는 지식총괄책임자 직함을 단 마크 보주라는 사내 작가다)의 신작전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 시대 예술가들의 흐느낌을 보여준다. 이전에 북한 김정일 정권이나 한국을 움직이는 대기업 삼성을, 성적 상상력과 결부된 타이포그래피(글씨)+플래시 아트로 빈정거렸던 그들이 과거와 다른 예술가들의 민감한 내면 풍경을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다운 인 후쿠오카 위드 디 벨라루시안 블루스’(DOWN IN FUKUOKA WITH THE BELARUSIAN BLUES)라는 난해하고 긴 제목의 이 전시장에는 영문과 한글이 뒤발된 글자 이미지 영상물들이 지하, 1~2층 곳곳에 흩어져 있다. 온통 영문 글자로 채워지고 순식간에 확 바뀌는 문장들로 채워진 이 전시 영상들의 줄거리는 대략 예술가를 암시하는 게이 커플의 기우뚱거리는 치정극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 ‘나’는 2년 전 일본 도쿄에서 마크라는 남자를 처음 만나 눈이 맞았다. 부인과 심각한 불화를 겪던 마크와 ‘나’는 외국으로 함께 여행을 다닌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민스크 등을 떠돌다가 ‘나’는 게으르고 역마살만 많은 마크에게 실망한다. 일본 후쿠오카로 떠나겠다고 ‘나’는 이별을 선언하지만, 광분한 마크는 그런 나에게 총을 쏘아 상처를 입힌 뒤 제발 같이 있어 달라고 사정한다. 공항으로 달려가는 나를 따라온 마크는 사정하면서도 계속 총을 만지작거리고, 결국 경찰에 신고해 조사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의 정체는 게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장영혜중공업은 이 전시 스토리텔링이 1873년 프랑스의 시인 베를렌이 또다른 시인이자 동성 연인이던 랭보에게 총을 쏴 상처를 입힌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밝히고 있다.
어렵고, 요동치는 영문 글자 텍스트를 무리해 뒤따라갈 필요는 없다. 다만 부르르 떨거나 심장 박동처럼 쿵쿵거리는 웹 글자들의 이미지들은 말의 기표와 기의가 불협화음을 이루는 지금 시대상과, 여전히 불안정한 예술가들의 내면을 떠올려보게 한다. 19세기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견지했던 불온한 반항과 일탈의 정서를 쏟아내면서도, 그 넋두리를 21세기 웹아트의 세련된 형식으로 담아낸다는 점이 이들의 정체성을 주목하게 만든다. 21세기에 대중 눈치를 보며 획일화의 길로 치닫는 현대미술의 발치에서 다시금 예술가의 새로운 독재를 외치는 듯한 그들의 글자 놀음은 울림이 길었다. 11월7일까지 서울 소격동 갤러리 현대. (02)2287-35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갤러리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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