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의 초상
김현철 ‘초상-전신의 세계2’전
이 땅의 전통 초상화는 가장 그리기가 까탈스런 장르다. 외모에다, 정신까지 빼닮게 그려야 한다는 엄격한 전제 조건이 붙는다. 당연히 대상인물의 삶과 발자취를 철저히 공부해 준비된 눈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조선시대 찬란했던 초상화 붓질 채색 기법은 20세기 명맥이 끊어져버렸다.
원래 산수풍경을 그렸던 전통화가 김현철씨는 5년여 전부터 이런 여건을 딛고 독학으로 전통 초상화를 그려왔다. 대학 시절 매료되었던 조선 초상화의 세계를 재현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했으나, 선뜩한 기운을 내뿜는 선비, 중신 초상화를 보는 것만으로는 역량을 채울 수 없었다. 초상화 제작에 얽힌 옛 기록인 화기를 찾아 꼼꼼히 읽어야 했고, 광물성 안료인 석채를 비단 화폭의 앞뒤로 은은하게 부려 단정한 색감을 만드는 기법도 스스로 닦아야 했다. 그는 이름난 근대 불교의 선승들의 진영 그림을 우선 점찍었다. 만해 한용운부터 19~20세기 국내 선불교의 거목이던 경허당 성우 선사, 그의 대를 이은 혜월 선사, 향곡 선사, 해인사 율사였던 자운 성우 선사의 초상을 그리며 수련했다.
지난 27일 서울 인사동 공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초상-전신의 세계 2’전은 2년 전 첫 전시에 이어 더욱 원숙해진 작가의 전통 초상화를 만나게 된다. 근대기 불교선사와 화가 장우성, 일반인들의 얼굴을 담은 이 전시에서는 작가가 파악한 성품과 인상의 결에 따라 얼굴선이나 옷 등의 채색, 선묘를 안배하는 내공이 엿보인다.
만해의 초상(사진)은 총상의 상처 때문에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나 치켜 올라간 형형한 눈빛과 앙다문 입술이 강골의 기상으로 충만하다. 평생 농사지으며 수행정진했던 혜월 선사의 담백한 용모는 가벼운 터치의 붓길이, 남성적 힘이 넘치는 향곡 선사의 당당한 얼굴과 법의는 진한 채색과 세필로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11월2일까지. (02)735-9938.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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