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제주 서귀포 약천사 대적광전에서 열린 작가 강명희씨의 전시 개막식 광경. 스님과 불자들이 강씨의 대작 <북쪽 정원> 앞에 앉아 작품을 지켜보고 있다.
추상화가 강명희 개인전
꽃살문 너머 수평선 울렁거리는 법당에 새 그림을 맞는 법석이 차려졌다. 천장이 절벽처럼 높은 3층 절집이다. 경내 중심인 황금빛 삼존 불상 앞에서 스님과 재가 불자들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삼배를 올리며 불상 한편 벽에 새 그림이 걸렸음을 고한다. 향 내음 흐르고, 대중의 눈빛도 흘러 흘러 불상 옆 벽을 주시하는 찰나, 미끄러지듯 베일이 걷히며 그림이 드러났다. 불화가 아니다. 이국땅 프랑스와 제주섬의 땅빛, 하늘빛에서 끌어온 ‘순수’와 ‘열정’의 색깔들로 아롱진 거대한 추상 그림이다. 법석은 조용하다. 스님과 대중은 눈 크게 뜨고 숨을 내쉬듯 올려다볼 뿐이다.
사찰 불자들과 인연 계기
서귀포 약천사서 단독전시
우주 합일의 경지 ‘닮은꼴’ 15일 오후 제주 서귀포 해변가의 큰 절 약천사 대적광전에서 개막한 중견 추상화가 강명희(63)씨의 신작 전시는 여러모로 파격이다. 사찰에서 단 한점만 걸린 현대 작가 개인전을 연 것부터가 전례 없는 일이다. 오랫동안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면서 작업해온 비불자 작가의 추상화 대작을 선뜻 불화와 나란히 내걸고 불가의 법으로 맞이해준 사찰의 아량 또한 유심해 보인다. 이날 걸린 그림은 가로 4m, 세로 5m를 넘는 유화 <북쪽 정원>. 작가가 프랑스 루아르강 인근 투렌의 18세기 농가 작업장에서 2년간 작업해서 완성했다. 형태 없는 다양한 색깔들이 도가니 속에서 부글부글 들끓듯 화면에 약동한다. 1970년대 초 프랑스에 건너간 이래 평면 화면 위에서 선과 색의 원초적 이미지를 평생 탐구해온 강씨에게 이 대작은 일종의 전환점과 같다. 작업하면서 먼저 응시하는 투렌의 투박한 정원 흙, 수시로 오가는 제주도 작업실과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보았던 각지의 땅에 대한 기억들이 갈마들며 작품이 생겨났다고 한다. 전시를 초대한 절의 주지 성원 스님은 “작가가 작은 정원을 통해 우주와 소통했던 기억을 우리 모두와 함께하게 해주었다. 그가 느낀 그 환희의 체험은 우주 합일의 경계를 체득한 부처도 넘나들었던 것”이라고 했다. “인연이란 게 바람결 같아요. 제주 화실을 차린 뒤 약천사 부근의 고찰 법화사를 드나들면서 거기 불자들과 먼저 인연을 쌓았어요. 거기 전각에 제 근작들을 모아 전시하려니까 <북쪽 정원> 같은 대작이 들어가기엔 작은 거예요. 그래서 한 불자의 충고로 약천사 스님을 찾았는데 사진을 보시더니 데꺽 승낙해주셨어요. 어떤 세속적 이해관계도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불자들과 전시를 누리게 됐습니다.” 사실 강 작가는 인연 맺기라면 아쉬울 것 없을 정도로 유목적인 삶을 살아왔다. 젊은 시절 남편인 화가 임세택씨와 프랑스, 한국 화단을 오가며 전시했고, 80년대엔 서울미술관을 운영하며 진보 미술인들의 활동 터전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90년대 이후엔 몽골,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러시아 캄차카, 예멘 등지를 돌며 자연 속 영감을 깔깔한 선과 색으로 표현해왔다. 그즈음 차린 제주 서귀포 작업실에서 맺게 된 섬바다와의 인연이 최근 그를 더욱더 새로운 에너지의 바다로 몰입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런 내력이 담긴 여러 선 드로잉과 색채 회화 100여점 등은 인근 법화사 구화루에서 별도로 볼 수 있다. 전시 행사의 말미는 시 낭송이었다. 파리에서 날아온 지인이자 저명 시인인 살라 스테티에와 시리아의 세계적 시인 아도니스의 시편들이 작품 주위에 울려퍼졌다. 한 비구니 스님이 아도니스의 시 ‘아루아드, 환상의 공주’를 낭랑하게 읊조렸다. “여자라고 불리는 섬, 그 섬 해변에는 봄의 풀들이 무성하다. 풀들은 파도와 거품을 불태우고 새벽의 실을 끊어 버린다….” 제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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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엔 몽골,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러시아 캄차카, 예멘 등지를 돌며 자연 속 영감을 깔깔한 선과 색으로 표현해왔다. 그즈음 차린 제주 서귀포 작업실에서 맺게 된 섬바다와의 인연이 최근 그를 더욱더 새로운 에너지의 바다로 몰입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런 내력이 담긴 여러 선 드로잉과 색채 회화 100여점 등은 인근 법화사 구화루에서 별도로 볼 수 있다. 전시 행사의 말미는 시 낭송이었다. 파리에서 날아온 지인이자 저명 시인인 살라 스테티에와 시리아의 세계적 시인 아도니스의 시편들이 작품 주위에 울려퍼졌다. 한 비구니 스님이 아도니스의 시 ‘아루아드, 환상의 공주’를 낭랑하게 읊조렸다. “여자라고 불리는 섬, 그 섬 해변에는 봄의 풀들이 무성하다. 풀들은 파도와 거품을 불태우고 새벽의 실을 끊어 버린다….” 제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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