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룰루’
치명적 복수극 그린 국립오페라단 ‘룰루’ 초연
국립오페라단이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오페라로 손꼽히는 <룰루>를 25~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무대로 올린다. 20세기 오페라의 걸작으로 꼽히는 <보체크>(보이체크)의 작곡가 알반 베르크(1885~1935)가 독일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 <대지의 정령>(1895)과 <판도라의 상자>(1904)를 토대로 1935년 만든 오페라 <룰루>는 모두에게 짓밟힌 뒤 치명적인 유혹으로 세상에 복수하는 한 여성의 비참한 죽음을 그렸다.
발표 당시 ‘퇴폐적인 범죄행위’, ‘죄악의 미화’ 등 혹독한 비난을 들으며 출판물은 모두 폐기판정을 받았고, 작가 베데킨트는 음란물 유포 죄로 고소당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룰루>는 여주인공 룰루를 향한 남자들의 육체적 탐욕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당시 중산층 계급의 위선적인 도덕관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당신은 늙어빠진 인생을 희생하여 내 젊음을 전부 소유했잖아요. 나는 세상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행동할 뿐이에요.” 룰루의 날선 목소리는 자신을 망친 남자들을 망치는 이유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베데킨트와 알반 베르크는 룰루를 입센의 희곡 주인공 노라,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의 뒤를 이어 기성 관습에 묶여 있었던 여성관을 탈피하는 존재로 그렸다. 이런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헤 알반 베르크는 12음 기법을 써서 반음을 오르내리는 멜로디와 불협화음으로 불안한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했다.
올해 <룰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무대에 오르며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 1월 독일 에센을 시작으로 독일 뮌스터, 스위스 제네바, 러시아 모스크바, 이탈리아 밀라노, 오스트리아 그라츠, 미국 뉴욕, 스페인 바르셀로나, 덴마크 코펜하겐 등에서 공연이 이어졌고,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첫선을 보이게 됐다. 국립오페라단 이소영(49) 단장은 “룰루만큼 주인공을 중심으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현대 오페라는 없었다”며 “주인공 룰루를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새롭게 제시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게슈뷔츠 백작부인 역의 메조소프라노 우테 되링(47)을 제외하고 주요 배역을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성악가로 짰다. 룰루 역은 독일 브레머하펜 극장과 오스트리아 빈(비엔나) 국립오페라단 등에서 주역 가수를 지낸 소프라노 박은주(44·부산대 음대 교수)씨가 맡았다. 박 교수는 2007년 브레머하펜 시립극장에서 오페라 <룰루>의 룰루 역을 맡아 순수한 소녀부터 창녀까지 다양한 매력을 보여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룰루가 사랑한 남자 쇤 박사 역과 룰루를 처참히 죽이는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 역을 동시에 연기하는 바리톤 사무엘 윤(38)씨는 “그동안 현대 오페라를 많이 했지만 이 작품만큼 많은 에너지를 쏟은 적이 없었다”며 “재미있는 연극을 보듯이 각 배역의 연기를 즐겨달라”고 주문했다.
독일 비스바덴 국립극장의 주역 가수로 활동하는 베이스 손혜수(34)씨, 테너 김기찬(33)씨와 김석철(36)씨, 베이스바리톤 조규희(42)씨 등이 출연한다. 연출은 독일의 젊은 여성 연출가 크리스티나 부스(41)가 맡았고, 독일 지휘자 프랑크 크라머(56)가 팀프앙상블과 함께 음악을 연주한다. (02)586-5282.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국립오페라단 제공
사진 국립오페라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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