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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좋아서 시작했는데 창작 50년 됐네”…“과실 따먹은 후배들 잔칫상 올려요”

등록 2010-11-24 09:31수정 2010-11-24 09:39

황병기 명인(왼쪽)·오대환 감독(오른쪽)
황병기 명인(왼쪽)·오대환 감독(오른쪽)
가야금 황병기 명인과 헌정공연 연출 오대환 감독
가야금의 대가 황병기(74) 명인이 후배 예인들로부터 기분 좋은 선물을 받는다. 음악, 무용, 미술 등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젊은 예술인 52명이 내년 황 명인의 창작활동 50돌을 기념해 12월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헌정 공연을 벌이는 것. ‘황병기의 소리여행-가락 그리고 이야기’로 이름 붙여진 특별한 성찬이다. 지난 시대 그의 음악들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현대 젊은 예술인들과 함께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특별한 음악회이다.

지난 주말 서울 북아현동 황 명인의 자택에서 공연을 앞둔 황 명인과 이번 공연을 연출하는 예술감독 오대환(56)씨를 만났다. 오 감독은 2001년 황 명인의 40돌 헌정 공연도 연출했다. 파격적 연출과 장르 가로지르기를 추구해온 그는 지난 40돌 공연 무대를 건축가 김인철 교수의 디자인으로 꾸미고 무당 이해경 만신의 춤판, 고 김대환 명인의 휘호 퍼포먼스 등으로 꾸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 공연이 국악과 다른 장르의 만남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곡 자체를 후배들이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파격을 지향한다. 세계적 클래식 기타리스트 야마시타 가즈히토는 황 명인의 첫 창작곡 <숲>을 반드시 자기가 연주하게 해달라며 이번 무대 출연을 자청하기도 했다.

막바지 연습중 틈을 낸 황 명인은 “내 음악을 좋아하는 국내외 음악인들이 헌정하는 무대라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뿌듯해했다. 오 감독은 “이번 공연은 황병기란 과일을 먹고 자양분을 얻은 사람들이 그 과일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잔칫상을 올리는 것”이라고 맞장구를 치더니 곧바로 “후배 연주자들에겐 엄청나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니 결코 후배들이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다”라며 눙치듯 딴죽을 걸었다.

황 명인은 “50년 전에는 가야금 작곡을 하는 선배도 없었고 이론서도 없어서 창작활동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냥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던 건데 다행히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많이 알아주어서 이만큼 온 것 같다”고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가야금을 접한 뒤 국립국악원에서 김영윤과 김윤덕에게 가야금 정악과 산조를 두루 배웠고 심상건과 김병호 등에게도 배웠다.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로도 가야금에 손을 놓지 못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62년 서정주의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 <국화 옆에서>를 발표하면서 가야금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숲>(1962)과 <침향무>(1975), <미궁>(1975), <비단길>(1977), <달하 노피곰>(1996) 등의 작품을 꾸준하게 발표했다. 외국에서도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올 7월 일본 신일철문화재단 초청으로 ‘일본의 카네기홀’로 불리는 도쿄 기오이홀에서 열린 공연은 3차례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황병기
“영적인 주제 선율에 담아왔죠” 사회도 맡고 ‘달하 노피곰’ 연주

오대환
“황 선생님 음악은 군살 없어…재현 넘어 ‘재해석 무대’ 될 것”


황병기 가야금 명인
황병기 가야금 명인
오대환 황 선생님 음악은 시쳇말로 군살이 없어요. 필요한 뼈와 필요한 근육과 필요한 힘줄만 있어요. 이번 50돌 헌정 공연은 황 선생님 음악을 표준모델로 삼고 성장해온 연주자들을 선택했어요. 나름대로 자기 관할 구역에서는 잘난체깨나 하는 사람들이죠.(웃음) 처음엔 ‘멋있는 작품 하나 만들겠습니다’라고 뛰어들더니 광장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황 선생님 음악은 쐐기 하나만 빼내도 전체가 무너져 내리거든요.

황병기 그럴 수가 있어요. 제 곡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곡마다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모방을 안 해요. 내가 수십년 전 쓴 곡을 스스로 ‘내가 저것을 어떻게 썼을까’ 생각하곤 해요. 다시 쓰라고 하면 절대 못 쓰겠어요.

오 구조적으로 치밀하다고 할까요. 흔히 황 선생님 음악을 ‘영적이다’, ‘명상적이다’라고 하지만 굉장히 수리적이에요. ‘사무적인 논리’가 아니라 ‘정신적인 논리’의 대차대조표가 딱 맞아떨어집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고 성숙한 음악이라는 걸 선생님 음악을 통해서 배웠어요.

연출가는 이번 헌정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들에게 절대로 퓨전이나 크로스오버은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말했다. “선생님 작품에 함부로 손댔다가 선생님한테 숙제검사받고 개망신당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제 작품은 주로 전통음악의 선율과 영적인 주제가 많아서 법정 스님도 산속에서 즐겨 들었다고 들었어요. 현각 스님도 제 음악 마니아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전통적인 것만 고집하지는 않아요. <미궁>처럼 가야금과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전위적인 음악도 있지 않아요?(이처럼 고정된 음과 리듬의 틀을 벗어나려는 황병기의 폭넓은 음악세계에 대해 영국 셰필드대 음악학 교수 앤드루 킬릭은 “모순을 명상하는 선의 경지”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오대환 감독
오대환 감독
죄송하지만 처음 선생님 음악을 다른 것과 비교해보니까 별로 재미없고 굉장히 단순했습니다. 선생님 음악 자체가 길어봐야 이중주잖아요. 그런데 조밀성에서 다른 음악과 차이가 굉장히 나는 거예요. 예술이라는 게 장르를 불문하고 조형미잖아요. 그 조형미가 굉장히 조밀하고 최소화되어 있는데 그 속에 든 함축적인 것이 듣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져요. 그래서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고 들어가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거니까 시쳇말로 콘텐츠가 무지무지하게 많은 거죠.

이번 연주회는 황 명인이 이금희 아나운서와 함께 직접 사회를 보며, 제자인 가야금 연주자 기숙희·박민정·이수은씨, 그리고 강권순(정가), 이지영(가야금), 한충은(대금), 강상구(피아노), 김웅식(타악), 김정수(장구) 등이 무대에 올라 <숲>, <미궁>, <고향의 달>(1976), <산운>(1979), <영목>(1979), <달하 노피곰>, <하마단>(2000) 등 대표곡 일곱 작품을 연주한다. 또 국악 앙상블 ‘비빙’과 ‘시나위’, 국악 그룹 ‘다스름’에 록 그룹 ‘어어부 프로젝트’도 참여한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무대미술가로, 서예가 김기상씨는 설치미술가로 참여하고 한국 무용가 김삼진이 이끄는 22인조 무용단과 현대무용가 안은미 등의 춤꾼들이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황 명인은 공연 마지막 순서에서 <달하 노피곰>을 연주해 후배들에게 답한다. (02)548-4480.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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