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숙 사진전 ‘시간의 비늘’
윤명숙 사진전 ‘시간의 비늘’
집요한 잠복과 관찰로 포착한
원초적 시간과 에너지의 흔적
집요한 잠복과 관찰로 포착한
원초적 시간과 에너지의 흔적
윤명숙(45)씨는 이 땅의 바다에 줄곧 시선을 쏟아온 사진가다. 선방에서 묵언수행하듯 바닷가 한구석에 숨어 카메라 들고 사시사철 동해, 남해, 서해 바다의 속살을 앵글에 담은 지 10년이 넘었다. 서울 통의동 전시공간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시간의 비늘’은 집요한 잠복과 관찰 끝에 얻은 바다 사진들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작들은 2003년, 2008년 개인전에 비해 훨씬 극적이며 구도가 다채로와졌다. 은하의 소우주 같은 달빛 바다, 깊은 밤에도 맥동하고 소용돌이치는 바다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그만큼 표정이 풍부해졌다는 말인데, 잔잔한 바다의 잔등이 비늘처럼 드러나는가 하면, 눈보라 속에 날카로운 포말을 비수처럼 내리꽂는 성난 바다의 맨 얼굴이 부각되기도 한다. 작가 내면의 감성이 투영되어 어둡거나 밝은 색감이 주로 도드라졌던 이전 작업과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갈수록 인간 존재의 시간을 초월한 바다의 시간을 담고 싶어졌습니다. 장소를 점찍으면 보통 5~6개월, 길면 1년까지 바닷가 한자리에서 지켜보며 촬영하는데, 이번에는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바다에 몰입한 순간들을 모았어요.”
제주 이호 해수욕장 해변의 정경(사진)은 그가 가장 아끼는 수작이다. 화산암 부석이 파도에 떠내려온 해조류 조각처럼 거뭇한 흔적을 해변 모랫가에 아로새긴 모습에는 원초적인 바다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다.
작가는 강원도 동해 추암 해수욕장 인근에서 이른 봄 눈발 마구 뿌리는 설해의 풍경 앞에 맞닥뜨린 적도 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푹푹 빠지는 해변의 눈밭을 걸어갈 수 없었고, 오직 파도와 직접 맞닿는 모래땅 사이를 간신히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빛나는 별무리 같은 눈발과 파도 거품이 화면을 온통 뒤덮은 사진 속에 그의 마음까지 온통 덮었던 3월 봄눈의 추억이 아른거린다.
최근작에서는 작가가 발견한 또다른 바다의 얼굴이 보인다. 해가 넘어간 뒤 노을 잔광을 받아 보랏빛으로 빛나는 바다. 그는 서해 만리포 앞바다에서 그 빛깔을 보았고, 그렇게 포착한 사진을 들머리에 걸었다. 우둘투둘한 바다의 피막, 물 빠지는 갯벌, 노을은 온통 보랏빛이다.
“바다를 찍을 때면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나를 감싼다”고 말하는 작가는 요즘 강원도 낙산 바닷가에서 5달째 잠복 촬영중이라고 한다. 6일까지. (02)720-2010.
노형석 기자, 사진 류가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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