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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빛나는 한사람 ‘미래의 오데트’를 키운다

등록 2010-12-03 09:05

4학년 여학생들이 턴을 하기 전의 4번 준비 동작을 취하고 있다.
4학년 여학생들이 턴을 하기 전의 4번 준비 동작을 취하고 있다.
세계최고 러시아 발레학교 ‘바가노바’를 가다
* 오데트 : ‘백조의 호수’ 여주인공
세묘노바·울라노바 스타 ‘산실’
“표현 중시…오페라·연기 교육”

성적 안 좋고 재능없으면 퇴교
졸업하면 마린스키 무대 공연

유리창 너머 눈발이 날리던 지난달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 9학년 교실에선 미래의 오데트(‘백조의 호수’의 여주인공)들이 피아노 선율에 맞춰 한창 연습중이었다. 류드밀라 코바류바 교사는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며 11명의 동작을 눈으로 훑기에 여념이 없었다. 학생들은 한 손으로 발레 바를 붙잡고 다리를 크게 차는 ‘그랑 바트망’과 두 손이 머리 위까지 올라와 큰 동그라미를 만드는 앙오 등 기본 동작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마침 이 학교를 찾은 이탈리아 발레 교사들이 참관하고 있었지만 학생들의 눈과 귀는 코바류바 교사에게서 떠날 줄을 모른다. 교실 한복판에선 이 학교를 세계 최고의 발레 사관학교로 키워낸 아그리피나 바가노바(1879~1951)의 사진이 후학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빛나는 한사람 ‘미래의 오데트’를 키운다
빛나는 한사람 ‘미래의 오데트’를 키운다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이하 바가노바)는 1738년 안나 여제가 프랑스의 무용가 장바티스트 랑데를 초청해 만든 러시아 최초의 황실무용학교로 출발했다. 이 학교 출신으로 마린스키극장에서 활동한 아그리피나 바가노바가 1930년대 개발한 전통 교육 지도법을 바탕으로 운영하면서 1957년 바가노바 발레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바가노바는 모교에서 세묘노바, 울라노바, 두딘스카야 등 세계적인 발레 스타들을 길러냈고, 이른바 ‘바가노바 교수법’을 창안해 세계로 전파했다.

‘클래식 발레의 문법’으로 통하는 바가노바 교수법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무용수의 내면과 표현력을 강조한다. 모든 동작과 정신이 신체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등의 힘과 팔의 유연성, 지구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 여기서 러시아 발레의 양대 산맥으로 역동적인 힘을 중시하는 볼쇼이 발레와 구별되는 마린스키 발레의 충분한 감정 전달, 우아하고 섬세한 동작이 탄생되었다.

이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 유학생인 안예원(19)씨는 “상체를 크게 사용하면서도 우아하고 섬세한 동작을 만드는 게 한국에서 배웠던 발레와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무용과 1학년을 다니다 지난 10월 6학년으로 편입한 그는 “한국에서도 기본적으로 바가노바 방식으로 가르치지만 이곳에선 동작을 훨씬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9학년 졸업반인 남학생 세르게이 스트레코브(19)는 “세계 최고의 선생님들로부터 옛날에 그분들이 어떻게 춤을 추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어떻게 춤을 춰야 하는지까지 철저하게 배우기 때문에 학생들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미로 같은 크림색 복도에는 최고의 무용수로 활동했던 이 학교 출신 스타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마린스키극장 무대에서 최고의 무용수로 활약한 뒤 모교의 교사로 돌아와 후학들을 지도하는 바가노바의 전통을 보여준다.

9년제인 바가노바는 만 10살부터 입학할 수 있다. 현재 300명이 전액 국비로 다니고 있으며 학생 2명당 1명꼴인 교사 150명이 이들을 가르친다. 유학생은 36명인데, 3분의 1가량이 일본인이다. 무용만 가르치지 않고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모던 댄스, 연기론, 프랑스어, 피아노 등 필수과목 말고도 국어와 수학, 문학, 미술, 역사도 가르친다. 알티나이 아실무라토바(49) 예술감독은 “문화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지식, 연기 등 무용수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며 “러시아 발레가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고 평가받는 것도 이런 교육의 힘이 크다”고 설명했다.


9학년 여학생이 돌면서 파세 자세를 취하고 있다.
9학년 여학생이 돌면서 파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신 학년이 올라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진다. 한해 평균 60명 정도를 뽑으면 9년 뒤엔 20명 정도만 졸업하게 된다. 학생 선발이나 퇴교 조치 등 모든 과정은 교사로 구성된 학교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세르게이 스트레코브는 “입학할 때 남학생이 25명이었는데 부상이나 시험 성적, 재능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학생들이 빠져나가 졸업반인 지금은 7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졸업하면 대부분 러시아 발레의 자존심인 마린스키 발레단의 무대에 선다.

“일정 수준 이상의 발레리나들은 거의 다 비슷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무대에서 한 사람만 봅니다. 그것이 재능이고 카리스마이자 아우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그냥 무용수인지 프리마 무용수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베라 도로피바(65) 교장이 들려주는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의 존재 이유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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