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기자
지난달 26일 문화방송 대학가요제가 열렸다. 1977년 막을 올린 지 34회째다. 깊은 역사만큼이나 명성 또한 대단했다. 대학가요제 수상은 가수 데뷔의 보증수표였다. 대상 수상곡은 예외 없이 국민애창곡이 됐다. 첫회 대상을 받은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부터 이범용·한명훈의 ‘꿈의 대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등 다 꼽자면 지면이 모자랄 터다. 배철수, 노사연, 유열, 신해철, 김동률, 이한철 등 수많은 가수를 배출했음은 물론이다. 프로페셔널 가수 등용문으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한 것이다.
하지만 올 대학가요제에선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참가자들의 전반적 수준은 장기자랑을 넘어서지 못했고, 들고 나온 음악 또한 주류 상업 가요들과 별다른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연출도 대학가요제만의 참신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참가자들에게 개인기를 시키며 예능 프로그램을 어설프게 흉내내는가 하면, 초대가수 특별무대에는 투피엠, 투에이엠, 비스트, 브라운아이드걸스 등 아이돌 그룹을 대거 내세웠다. 대형 기획사가 주도하는 천편일률적 가요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대학가요제다운 모습이 아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배정윤씨는 시청자게시판에 “대학가요제가 아니라, 쇼 음악중심 한 회분을 시청한 것 같아, 진짜 실망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게시판 글 대다수가 비판적 의견이다. 시청률은 5%대에 그쳤다.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중계에 밀려 3시간 지연 중계를 했다는 점 또한 방송사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렇게까지 해가며 대학가요제를 이어가야 하는 건지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4일 열린 이비에스 스페이스 공감 <2010 올해의 헬로루키>에선 여러모로 대비되는 장면이 많았다. 서울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주로 활동하는 신인 음악인들이 대거 몰리는 대회로, 매달 100여팀의 경쟁에서 뽑힌 ‘이달의 헬로루키’들이 연말 결선을 벌이는 자리다. 이날 결선에 오른 7팀은 각기 너무나 또렷한 개성과 색깔을 보여줬다. 대중음악이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예술의 한 갈래이기도 하다는 점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긴장과 자극을 불어넣어 가요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이야말로 ‘헬로루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아쉬움이 적지 않다. 교육방송은 이 대회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오는 26일 녹화중계할 예정이다. 대상을 받은 야야는 수상 소감에서 “아직 소속사도 음반도 매니저도 돈도 없지만 이 상을 계기로 음악을 평생 해나갈 용기를 얻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저답게 해나가겠습니다”라며 울먹였다. 그러나 이날 수상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언론과 음악산업 관계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문득 <슈퍼스타케이> 참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 중계하듯 보도하는 언론, 계약을 따내기 위해 물밑 입찰 경쟁을 벌이는 가요기획사들의 그림자가 스친다. 문화방송은 <음악여행 라라라>를 없애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을 만들었다. 한국방송 정통 라이브 프로그램 <음악창고>도 곧 자취를 감춘다. 음악은 사라지고 쇼만 넘쳐난다. 오늘 대한민국의 슬픈 배경음악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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