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작 <생라자르 역 뒤에서>(1932) ⓒ magnum photos/Henri Cartier-Bresson/ 유로크레온
모자 쓴 남자가 물 웅덩이를 풀쩍 뛰어넘는 한순간을 카메라는 붙들었다. 19세기까지 꿈도 못꿨던 ‘눈 깜짝할 사이’는 영원으로 남았다.
사진 속 찰나의 시선은 근대적 주체의 시선이다. 1000분의 1초까지 포착하는 찰나의 이미지들이 시각 문화의 역사에 등장한 건 19세기 발명된 ‘빛의 기계’ 덕분이었다.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프랑스 사진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은 순간을 낚는 카메라의 권능에 감성적 직관을 녹여 현대 사진의 문법을 만들어냈다.
<생 라자르…>의 배경은 19세기 인상파 화가 모네가 기계문명의 공간으로 묘사했던 파리 생 라자르 역 뒷문 부근. 한참 주위를 서성거리던 거장은 뒤편 울타리의 갈라진 틈에서 사진사에 남을 ‘점프’를 포착해냈다고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남자의 뜀 동작은 뒤쪽 담벼락 포스터 속 댄서들과 닮았다. 일상은 근대에서 더이상 지나치는 시간이 아니라 곱씹는 ‘개념’으로 눈에 들어오게 됐다. “사진이란 짧은 순간 한 사건을 표현하는 형태와 의미의 조화를 동시에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그 필연적 변화를 일찌감치 알아차린 선지자였다.
브레송은 전시의 주인공인 기획자 로베르 델피르와 평생 지기였다. 자기 작품을 ‘눈감고’ 델피르에게 주었고, 사진집 기획과 편집에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신문사가 마련한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 델피르와 친구들’ 전(내년 2월2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02-710-0765)은 전례없는 사진 거장들의 걸작 잔치다. 출품된 걸작들을 매주 두차례 지상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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