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토종 재즈 1세대 그냥 저물게 할 순 없다

등록 2010-12-24 08:37수정 2010-12-24 13:47

‘이판근 프로젝트’ 앨범 지휘한 김현준
‘이판근 프로젝트’ 앨범 지휘한 김현준
기록에 팔 걷은 음악평론가 김현준·남무성
두 재즈 평론가가 일을 냈다.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토종 재즈 1세대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남무성 평론가는 재즈 1세대 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브라보! 재즈 라이프>를 제작·연출했다. 김현준 평론가는 한국 재즈의 전설적 이론가 이판근의 음악을 후배 음악인들이 재해석한 ‘이판근 프로젝트’ 앨범 <어 랩소디 인 콜드 에이지>의 프로듀싱을 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이 펜대 대신 메가폰을 잡고 녹음실을 들락거린 걸까? 1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회 영화를 감명 깊게 봤다. 어쩌다 이런 작업을 하게 됐나?

남무성(이하 남) 처음부터 재즈 1세대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그분들을 기록하는 영화라도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만 막연하게 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이판근 선생 연구실이 강제 철거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를 봤다. 또 그즈음 트럼페터 강대관 선생이 은퇴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냥 있을 수 없어 영화 만드는 데 얼마나 드나 알아봤더니 <용서받지 못한 자>가 3500만원 들었다더라.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어 직접 나선 것이다. 친구와 내가 반반씩 투자했는데, 우리가 초짜여서 결국 예상보다 서너배 이상 돈이 들었다.

사회 이판근 선생 연구실은 어찌 됐나?

다 철거됐다. 재개발이 아니라 도로 건설 때문이어서 보상도 제대로 못 받았다. 당시 선생이 딸과 함께 투쟁하며 요구했던 건 근방에 작은 공간을 내달라는 거였는데, 묵살당했다. 선생이 40년 동안 자료 모으고 작업하고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었다. 외국에선 재즈 박물관으로 만들 정도의 공간을 그냥 없애버린 것이다.

김현준(이하 김) 국내에서 음악 좀 한다는 이들은 재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통로가 이판근 선생밖에 없었다. 제자가 2000명이 넘을 거다. 심수봉, 김수철, 박학기, 윤수일, 인순이, 봄여름가을겨울, 빛과소금…. 윤도현 밴드도 와서 인사하더라. 선생은 일흔여섯살인 지금도 우리 민요를 재즈로 편곡하고 외국의 재즈 스탠더드 곡에 우리말 가사를 붙이는 등 작업을 계속하신다.

사회 이판근 프로젝트 앨범은 어쩌다 만들게 됐나?

미8군 무대 섰던 밴드들이 뿌리
현재 이판근 선생 등 명맥 이어
정부가 보호해야 할 순수예술

재즈 관계자들 사이에서 늘 1세대 이야기는 하는데, 자료가 없다. 1960년대만 해도 한국 재즈가 일본 재즈보다 수준이 높았다는 얘기를 전해 듣지만 당시 음악을 들을 수가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이번에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인재진 예술감독과 의기투합해 이판근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기왕이면 단순한 기록보다는 평균 30대 중반의 젊은 연주자들이 선생의 음악을 자유롭게 해석하며 영감을 얻도록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지난 10월 자라섬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고 앨범까지 냈다.

이 앨범의 가치는 이판근 선생의 직계 제자들이 아니라 선생의 이름만 알던 젊은 연주자들이 연주하며 소통한 ‘또다른 헌정’이라고 본다. 최신 흐름을 더해 1세대 음악이 낡았다는 선입견을 없애기도 했다. 프로듀서의 공이다.

사회 재즈 1세대는 어떻게 처음 시작됐나?

1950~60년대에 미8군을 통해 재즈가 전파됐다. 당시 미8군 무대에 섰던 연주자들이 엄밀히 말해 진짜 1세대다. 영화 <자유부인>을 보면 카바레에 나오는 음악이 다 재즈다. 그 연주자들이 모두 1세대다. 근데 베트남전이 터지고 미8군 밴드들이 몽땅 그리로 가면서 명맥이 끊겼다. 전쟁 뒤엔 재즈 대신 로큰롤이 미8군에서 유행했다. 연주자 절대다수는 음악 스타일을 바꾸거나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하지만 기록이 없어 당시 연주자들 중 이름이 전해져 오는 분들은 몇 안 된다. 계속 재즈를 해온 이판근·강대관·김수열·이동기 선생 정도다.

특별한 사람들 전유물 아니라
세계 실용음악에 영향 준 영역
어렵게 뿌린 씨앗 지금도 유효

‘브라보! 재즈 라이프’ 다큐 만든 남무성
‘브라보! 재즈 라이프’ 다큐 만든 남무성
사실 영화에 나온 분들 모두가 엄밀히 따져 1세대는 아니다. 그분들과 함께 무대에 섰던 연주자들도 1세대로 묶은 것이다.

이후 이분들로부터 음악을 배우고 개중 일부는 유학도 다녀온 이정식·임인건·전성식·김광민·한충완·정원영 같은 연주자들이 2세대로 분류된다. 유학파 2세대로부터 음악을 배우고 다시 유학을 다녀온 송영주·배장은 등은 3세대로 볼 수 있다. 요즘 새로 나오는 젊은 연주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4세대가 아닐까 한다.

1세대 분들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 준 것이 없다”고들 말씀하시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분들이 씨앗을 뿌려놓았기에 오늘 4세대 젊은 연주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사회 1세대 중 재즈를 계속하신 분들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재즈로는 돈을 절대 못 벌었고, 호텔·카바레 등 밤무대에 섰다. 그러고 나서 새벽에 재즈 클럽에 모여 밤새 연주했다. 돈벌이로는 방송이 큰 도움이 됐다. <쇼쇼쇼> 같은 프로를 보면 뒤에 풀 밴드가 섰다. 거기서 가요를 연주한 것이다. 방송으로 가는 걸 변절로 여긴 이도 있었지만, 생계를 위한 거니 손가락질할 건 아니라 본다. 어쨌든 밤무대·방송을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재즈를 품고 있었으니까.

박춘석·길옥윤 같은 분들은 가요 작곡가로 갔다. 박성연 선생은 밤무대도 하고 방송도 했지만, ‘야누스’라는 재즈 클럽을 차려 거기서 평생을 노래했다. 다른 연주자들도 그곳에 모여 함께 재즈를 했다. 다들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돈도 못 벌고 고생만 하다 이제 저물어가는 거다. ‘야누스’는 문 연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제 손님이 별로 없다고 한다.

사회 1세대 분들이 지금도 무대에 서나?

홍대 앞 ‘문글로우’라는 클럽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합주를 한다. 요새 ‘야누스’에는 젊은 연주자들이 주로 나온다. 김수열 선생은 대학로 ‘천년동안도’에, 류복성 선생은 청담동 ‘소울투갓’에 가끔 선다. 그게 그분들 생업이다. 10만원 안 되는 돈을 받고 행사를 한다.

사회 이판근 선생 연구실마저 헐리는 상황에 아쉬움이 많겠다.

1세대 분들에게 뭘 해주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 일단 재즈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었으면 좋겠다. 재즈는 남의 나라 음악,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세계 실용음악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뿌리다.

정부기관 등에서는 재즈를 대중음악의 한 장르 정도로 취급한다. 상업음악이니 경쟁에서 이겨 돈 벌면 버티는 거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다. 하지만 재즈는 다른 상업음악과 게임이 안 된다. 재즈는 클래식처럼 보호해야 하는 순수예술 영역이다. 재즈를 보호하고 우대한 유럽·일본 등은 문화 강대국이 됐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한류 운운하며 돈 되는 분야에만 돈을 붓는다. 돈 놓고 돈 먹는 투기다. 그나마 희망을 본다면, 요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연주자들은 재즈가 돈 안 되는 음악인 줄 알면서도 한다는 거다. 낮에 아르바이트 하고 밤에 클럽에서 연주한다. 홍대 앞 인디밴드 마인드와 다르지 않다.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요즘 세대는 치열하게 싸우기보다는 즐기면서 음악을 하는 것 같다. 실용음악을 공부하며 재즈를 응용하기도 한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정통 재즈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사회·정리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다큐와 음악으로 만나는 ‘한국판 부에나비스타…’

한국 재즈 1세대 얘기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한국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 부를 만하다. 강대관·이판근·조상국·이동기·김수열·류복성·최선배·박성연·김준·신관웅 등 연주자들의 어제와 오늘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서울 홍대 상상마당시네마, 씨지브이(CGV) 대학로·압구정·구로·인천·오리·서면, 영화공간주안, 광주극장, 부산 국도앤가람예술관, 부산 아트씨어터씨앤씨, 대전아트시네마, 대구 동성아트홀 등에서 상영한다. 30일에는 파주 씨너스 이채에서도 개봉한다.

28~29일 서울 역삼동 엘아이지(LIG)아트홀에서는 ‘브라보! 재즈 라이프’ 공연도 열린다. 영화 속 재즈 1세대 연주자들이 직접 무대에 오른다. 다음달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도 예정돼 있다. 재즈 1세대들이 이렇게 큰 무대에 서는 건 처음이다. 두장의 시디로 구성된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도 발매됐다.

‘이판근 프로젝트’에는 손성제(색소폰)·오정수(기타)·남경윤(피아노)·김인영(베이스)·이도헌(드럼)이 참여했다. 한국 재즈의 현재와 미래를 짊어진 젊은 연주자들이다. 이들이 이판근 선생의 작품 8곡을 자유롭게 해석해 재창조한 것이 <어 랩소디 인 콜드 에이지>라는 제목의 앨범에 담겼다. 이판근 프로젝트는 최근 교육방송 <스페이스 공감> 녹화를 하고 활동을 일단락했다. 방송은 다음달 말 전파를 탈 예정이다. 내년에는 또다른 형태의 ‘이판근 프로젝트 2’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서정민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