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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르와 친구들] 성남훈 작가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찍을 수 있었는데…”

등록 2011-01-07 14:49수정 2011-01-07 19:14

전시회 설명에 나선 성남훈 작가
전시회 설명에 나선 성남훈 작가
“멀리서 지팡이를 짚고 걸어 오는 노인을 보았습니다. 아! 그가 바로 브레송이었습니다.”

순간 관람객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성남훈 작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전설의 사진가 브레송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 왔습니다.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카메라 셔터위에 놓인 손가락에 힘이 갔습니다. 그러나 브레송의 허락을 받고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노인에게 말을 걸었죠.”

지난 6일 오후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이 열린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전시실에는 이날 특별 도슨트로 나선 한국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의 사진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수십명의 관람객들이 모였다.

파리에서 사진유학을 한 뒤 현지 사진에이전시 라포의 회원으로 활동했던 성 작가는 지난 96년 파리 1구역의 튈르리 정원에서 우연히 만난 사진의 대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의 인연을 그의 사진 앞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당시 88살의 나이로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고 있던 브레송은 한쪽 다리가 불편해 항상 지팡이를 짚고 산책을 하곤 했다고 한다.

그를 알아 본 성 작가는 자신을 브레송에게 소개한 뒤 인물 사진을 찍고 싶다고 요청했으나, 브레송은 완강히 거절했다고 했다.

“브레송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초라한 노인의 모습은 노출하고 싶지 않다며 포즈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찍지 못했어요. 그때 몰카라도 찍었으면”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에게 사진을 설명하는 성남훈 작가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에게 사진을 설명하는 성남훈 작가
대학 졸업한뒤 한때 연극배우로 활동한 적이 있는 성 작가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재치있는 입담으로 전시장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사진과 사진가에 대한 깊이있는 설명과 해석을 쉬지않고 늘어 놓았다.

정신병동 사진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장 루이스 코르티낭의 사진 앞에서는 그의 사진이 자신에게 준 영향을 상세히 설명했다.

“지난 80년대 중반 우연히 장 루이스의 어린이 암 병동 사진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그리고 결심 했어요. 사진을 찍으려면 이렇게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작업을 해야 하겠다고요.”

코스보 내전현장에서 만난 세바스치앙 살가두와의 일화도 관람객들의 귀를 사로 잡았다.

“당시 보급품을 타려고 난민들이 긴 줄을 서며 기다리고 있었어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줄이었어요. 순간 그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렌즈를 들이 댔어요. 그런데 셔터를 누를 수 없었어요. 곳곳에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밝은 표정으로 뛰어 다니며 놀고 있어서 전장의 긴장감이나 참혹함이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때 머리를 빡빡 밀은 세계적인 사진가 살가두가 조수와 함께 나타난 것입니다. 그에게 말을 붙이니 그가 반갑게 이야기를 받아 줬어요. 그런데 그는 저와 이야기를 하다말고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 난민들의 모습을 찍는 거였어요. 마치 뒷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누르고 유유히 사라졌어요. 역시 대가였어요.”

관람객들은 그의 설명과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사진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 들었다.

구 소련의 체코 침공을 사진을 통해 세계에 고발한 매그넘 회원인 요세프 쿠델카와의 일화를 말할 땐 성 작가의 목소리에 유난히 힘이 실린다. 왜냐하면 성 작가에게 큰 힘을 준 이가 바로 쿠델카였기 때문이다.


전시 설명을 마친 뒤 관람객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변하는 성남훈 작가
전시 설명을 마친 뒤 관람객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변하는 성남훈 작가
“쿠델카를 한번 만난 적이 있어요. 바로 파리의 매그넘 사무실이었어요. 쿠델카에게 면담 요청을 하니 딱 5분의 시간을 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침 갖고 있던 제 사진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평가를 부탁했어요. 그는 제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동양적 정서가 묻어 있는 집시 사진이 마음에 든다’며 ‘앞으로 6개월에 한번씩 만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하더군요. 속으로 신이 났습니다.”

당시 사진에 대한 알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쳐 슬럼프에 빠져있는 성 작가에게 쿠델카의 격려는 매우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성 작가는 중간 중간 사진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사진은 역사성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단순한 현상을 담아두는 것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역사가 됩니다. 그러기에 사진을 찍는 이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누군가 다 찍은 모습이지만 내가 찍기에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기 때문에 다시보고 색다른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진 찍는 이 모두 스스로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셔터를 눌러야 합니다.”

1시간에 걸친 사진 설명을 마친 성 작가는 마지막으로 관람객들로부터 다양한 질문에 답했다.

“사진가엔 중요한 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재능이 첫 번째이고, 주변의 사진가들과 변치 않는 우정을 유지하는 것이 두 번째 중요한 덕목입니다. 로버트 델피르는 이를 평생 온 몸으로 실천한 예술인입니다.”

모든 설명을 마친 성 작가는 전시장 한켠에 있는 52분짜리 기록영화를 꼼꼼히 지켜 보았다.

델피르의 부인이자 사진가인 사라문이 직접 제작한 델피르의 사진세계에 대한 기록영화인데, 성 작가는 “사진에 대한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시원하게 풀리는 즐거움을 맛보았다”고 즐거워했다.

글.사진/이길우 사업국장 nihao@hani.co.kr


한 여성 관람객에게 사인을 해주는 성남훈 작가
한 여성 관람객에게 사인을 해주는 성남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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