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내한공연
‘가상’ 협연·깜짝 게스트…
온라인 생중계 서비스까지
‘가상’ 협연·깜짝 게스트…
온라인 생중계 서비스까지
무대에는 뚜껑을 떼어낸 그랜드 피아노 두 대가 옆구리를 맞대고 붙어 있었다. 건반과 빈 의자가 무대 좌우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정확한 대칭이었으리라.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사카모토 류이치(사진) 내한공연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 뒤, 유난히 관객들의 기침 소리가 잦았다. 공연이 시작된 뒤엔 기침으로 연주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들렸다.
무대와 객석이 서서히 어둠에 휩싸였다. 고요한 적막 속에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피아노에 다가갔다. 그리곤 기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현을 뜯는 소리.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에 자연에서 따온 듯한 여러 소음이 간간이 끼어들었다. 스산한 느낌이 마치 황병기의 ‘미궁’을 듣는 것 같았다. 무대 뒤로 하얀 그림자 같은 영상이 어른거렸다. 최근작 <아웃 오브 노이즈>에 수록된 ‘글레이셔’(빙하)가 연주되는 동안 스크린 자막으로 “그린란드 기후변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는 등의 메시지가 떴다. 환경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그는 투어 때 탄소 배출을 최대한 억제하려 애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험적이고 묵직한 <아웃 오브 노이즈>의 몇 곡을 더 연주한 뒤 사카모토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류이치 사카모토입니다”라고 또박또박 인사했다. 그러곤 다른 분위기의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 플라워 이즈 낫 어 플라워’ 등 예전 발표곡들을 투명한 살얼음 위를 살포시 딛는 듯한 느낌으로 연주해나갔다. 국내 팬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음악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런스’를 본공연 마지막곡으로 연주할 땐 관객들의 눈빛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앙코르 무대. 사카모토가 피아노를 치자 맞은편 피아노 빈 의자 앞 건반도 따라 춤췄다. 미리 프로그래밍해둔 디스클라비어 시스템으로 자동 연주되어, 말하자면 사카모토가 두 대의 피아노로 가상 협연하는 꼴이었다. 주로 자동 피아노가 코드를 깔고 사카모토가 주 선율을 연주하는 식으로 꽉 찬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사카모토가 결성한 일렉트로닉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의 곡 ‘비하인드 더 마스크’에 이어 ‘사우전드 나이브스’까지 연주하고 다시 무대 뒤로 사라졌다.
박수가 그칠 줄 모르자 다시 무대에 나온 그는 갑자기 ‘깜짝 손님’을 소개했다. 래퍼 엠시스나이퍼가 나오자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엠시스나이퍼는 사카모토의 2004년 발표곡 ‘언더쿨드’에 참여하긴 했지만, 이렇게 한무대에 서리라곤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카모토의 피아노 연주 위로 엠시스나이퍼는 이라크 전쟁을 다룬 ‘언더쿨드’ 가사를 북한의 연평도 폭격 관련 내용으로 살짝 바꿔 랩을 했다. 가장 이질적이었으나 가장 생생한 장면이었다.
이날 공연은 소셜미디어 ‘유스트림’으로 생중계됐다. 사카모토는 트위터로 생중계 소식을 미리 알려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팬들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서정민 기자, 사진 빈체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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