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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한폭 추상화처럼 소리로 그린 음악

등록 2011-01-11 08:33

황보령
황보령
미국 대학서 미술 전공하다
이상은 코러스로 이름 알려
회화적 요소 음악에 극대화
“올해엔 그림 전시회 열고파”
4집 ‘마나 윈드’ 낸 로커 황보령

아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하얀 도화지에 선을 긋고 색을 칠하며 입으로는 “슉~”, “휘~”, “오오~” 따위를 중얼거렸다. 왜? 재밌으니까. 그림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중학생 때는 선물로 받은 통기타를 뚱땅거리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미술과 음악에는 흥미가 없었다. 교과서 귀퉁이, 신발, 심지어 손등에 그림 그리는 게 훨씬 더 재밌었다. 고등학생 땐 학교에도 잘 안 갔다. 그러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 학교에는 재밌는 게 많았다. 모차르트에 꽂혀 밴드부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배웠다. 미술부·사진부 활동도 했다. 좋아하던 미술을 신나게 파고들다 보니 뉴욕의 명문 미술대학 프랫 인스티튜트에 입학하게 됐다. 밴드를 결성하고 길거리와 바닷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잘나가던 가수의 길을 잠시 접고 미술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건너온 이상은을 학교에서 만났다. 마음이 통한 둘은 곧 친해졌다. 1993년 이상은 5집 수록곡 ‘언젠가는’에 코러스로 참여하고 ‘여름밤’을 작사·작곡하며 고국의 음악판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의 이름 황보령(사진)이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 음악과 미술을 오가던 그는 98년 1집 <귀가 세개 달린 곤양이>와 2001년 2집 <태양륜>을 잇따라 발표했다. 홍대 앞 인디신에서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2002년 돌연 남은 학업을 마치겠다며 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2009년 발표한 3집 <샤인스 인 더 다크>는 강력한 복귀작이었다. 밴드 ‘황보령=스맥소프트’의 이름으로 내놓은 이 앨범은 한층 농익은 음악세계를 펼쳐보이며 어느덧 희미해진 이름 석 자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각인시켰다.

마침내 4집 앨범이 나왔다. ‘초자연적 바람’을 뜻하는 <마나 윈드>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초현실적이고 몽롱한 기운이 앨범 내내 휘감는다. 때론 드럼이나 베이스마저 거세된 여백이 두드러지고, 때론 세세한 소리의 결이 쌓이고 또 쌓여 거대한 퇴적층을 만들어낸다. 선물로 받은 애플 아이맥 컴퓨터로 익힌 미디 프로그래밍은 소리의 심해를 탐험하는 데 더없이 유용한 도구가 됐다. 기타와 전자음만으로 이뤄진 8분이 넘는 연주곡 ‘라코닉 프레이즈’(브이 룸)는 그 탐험의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그의 음악에 늘 수식어처럼 붙어온 ‘회화적 이미지’는 극대화됐다. 어느 곡을 듣더라도 한 폭의 그림 또는 영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는 이런 현상이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저는 늘 음악과 이미지가 거의 동시에 떠올라요. 소리에도 모양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똑’ 하는 소리에는 물방울이 떨어져 튀어오르는 모양이 담겨 있고요, 4집 수록곡 ‘솔리드 버블스-한숨’ 도입부부터 나오는 ‘우욱 우욱’ 하는 소리는 거품들이 만들어지는 모양을 떠올리게 하죠.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며 소리를 내던 버릇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요즘도 그림을 그리며 ‘슉슉~’ 소리를 낸다니까요.(웃음)”

황보령은 그림도 꾸준히 그린다. 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를 화폭에 옮기는 것이다. “그동안 그린 그림을 여기저기 선물해서 별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새해도 됐고 하니 다시 꾸준히 그려 전시회를 꼭 한번 해야죠.”

지난해 12월30일 새 앨범 발매 공연을 마친 ‘황보령=스맥소프트’는 오는 27일 저녁 서울 홍대 앞 클럽가에서 열리는 ‘달빛요정 추모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황보령은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동료 음악인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의 빈소에서 밤을 지새고 온 아침, 애초 만들어놓은 곡에 고인을 기리는 노랫말을 붙였다. 새 앨범 마지막곡 ‘호라이즌’에서 그는 노래한다. “어디서든 평안하소서.” 하늘까지 전하고픈 바람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스맥소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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