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매년 한해가 시작될 때가 되면 어렴풋이 다가오는 이름이 있다. 올해로 우리 곁을 떠난 지 15년이 된 가수 김광석이다. 이제 그는 우리와 한 공간에 거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귀를 기울여 그의 음성을 들어 보자. 그러니까 지금, 머나먼 독일 땅에서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유가 있다. 모든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 그의 기일이었다. RIP.
동경했던 이들이 있었다. 모든 것을 이루고 저 세상으로 사라진 자들. 이제 육체는 더 이상 공기를 호흡하지 않지만, 그 그림자는 길게 꼬리를 늘어뜨러 산 사람들을 비춘다. 김광석의 그림자는 여전히 따사롭다. 18년 전에도, 18년 후에도.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건 지워질 수 없는 자취였다. 누구에게라도 그런 흔적을 남기는 순간은 있다.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밤중에 빛나던 그의 노래를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김광석은 지금도 내 곁에 있다. 그의 이름이 잊혔다면, 일상이라는 무게 때문이다. 그러나 불현듯 다시, 그가 결코 망각되지 않을 존재라는 점을 각인한다. 길을 지나다 간판을 본다. 제목은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다. 그의 노래다. 그는 그렇게 다시 내게로 온다.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그녀가 처음 울던 날’로 바뀌고 어느새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된다. 그렇게 한바탕의 추억놀이가 시작된다. 추억은 가끔 진부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련함은 추억을 증폭한다. 약간은 유치한 되새김질마저도 아름답게 하면서.
작년 추석 연휴였다. 서울 지역엔 어마어마한 비가 내렸다. 그칠 줄 모르는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렸고, 나는 우울해졌다. 알다시피 모든 이에겐 우울함이 있고, 그날은 내가 그 환자였다. 갑자기 김광석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허나 먼지 구덩이 속 음반을 꺼내기는 귀찮았고, 전세계인의 추억 재생소 유튜브에서 그의 동영상을 검색하기로 했다. 세상은 이렇게 좋아졌다. 클릭! 클릭! 주루룩 추억이 흘러갔다. 그의 노래들이 정렬되었다.
잠시 향수를 끌어안고 있을 무렵, 나는 흥미로운 동영상을 발견했다. 그의 노래 아래에 달린 이상한 댓글들. 한국어가 아니었다. 이건 어느 나라 말일까. 그것들은 대부분 독일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독일에서 생뚱맞게 김광석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었을리는 만무했다. 이 모든 사건엔 뭔가 계기가 있을 터였다. 궁금함에 목마른 나는 링크를 타고 사건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몇 번의 수고 끝에 드디어 출발점이 된 뮤직 비디오와 대면했다. ‘Kim Kwang Seok’. 독일 언더그라운드 힙합 그룹 오르존스(Die Orsons)의 노래였다. 다시 검색이 시작되었다. 서핑을 통해 번역된 노래가사를 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래의 가사는 명료하다. 우리(독일)보다 이력서가 중요하고, 개고기를 먹는 나라에 홀로 노래하던 한 가수가 있었다. 그는 방송에서 노래하길 꺼렸으며, 사람들을 모아놓고 노래하길 즐겼다. 그런데 그는 1000번째 공연을 마치고 자살했다. 그는 한국의 밥 딜런이자, 커트 코베인이다. 유튜브에 그의 이름을 입력해라. 그리고 흐느껴라. 가사의 내용은 이러했다. 이건 일종의 트리뷰트 송인 셈이다.
이들은 왜 김광석을 부르고 있을까? 무엇보다 한국과는 아무 연관도 없을, 유럽의 힙합 보이들이 어떻게 그를 알게 되었을까?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쉽게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름의 추리가 시작되었다. 결론은 이랬다. 노랫말 중에 유튜브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웹을 돌아다니다 김광석의 보석들을 구했을 것이다. 지극히 낯선 언어의 바다. 그러나 노래는 그런 장벽을 쉽사리 뛰어넘는다. 그게 음악 언어의 보편성이다. 그렇게 그들은 헌정곡을 쓰기로 결심한다. 아마 독일 노래 ‘킴쾅제옥’은 그렇게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킴쾅제옥이든 김광석이든, 독일어든 한국어든 문제될 것이 있을까? 차근차근 댓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모두들 찬사일색이었다. 이렇게 가슴에 밀어 닥치는 짠한 음악을 알게 해준 오르존스에게 감사한다는 말. 김광석의 노래를 한 글자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가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는 말. 2010년 죽은 김광석은 세상의 다른 편 끝에서 불현듯 출현했다. 그의 노래에 감성이 마비된 독일인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건 현재진행형이며, 문제의 동영상의 클릭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좀 더 주의 깊게 보았다면, 그들이 새겨 넣은 수많은 추모의 인사도 함께 만나보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의 앨범이 있다. 1995년 발표된 [다시 부르기 2]. 다른 가수의 노래들을 원곡들 저리갈 만큼의 절창으로 재해석한 걸작 앨범이다. 여기에 실린 모두가 좋은 노래들이고,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올 만큼 저릿하고 뭉클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사연이 있는 노래다. 아이를 키우고, 그들이 자라던 모습을 평생 함께 한 부부의 마지막 순간 이별 이야기다. 신파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정말 병신 같이 쏟아내고야 만다.
그의 목소리는 정말 아프다. 청자의 감성 수치를 최대치로 올려놓고는 본인은 정작 담담하다. 그건 신비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무섭다. 언젠가 그의 노래가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언젠가부터 감동에 무감각해진 자신을 본다. 실은 이젠 그 모든 것을 잊었을까봐 두렵다. 그건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를 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실은 어제의 나로부터 사라져가는 나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의 노래를 틀어놓고 쓴다. 유한성의 중심에서 세상을 다 안다 겁 없이 외치는 우리 인간들은 정작 자신들의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그러다 서른이 오고, 매일 이별하는 마음으로 인생엔 쓴맛이 섞여 있다 위안하다 숨 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꿈은 깨어진다. 그렇게 소식마저 알 수 없는 타인이 된 채 잊히는 것으로 남는다. 때로 김광석의 어법은 잔인하다. 그러나 그 속에 든 파편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오늘의 나를 자극하고 가르친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평균대 위를 걸어가는 광대와도 같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좌절하고 누군가는 실연할 것이며 누군가는 입시를 실패할지도 모른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을 잃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한 일상의 평균성이다. 그러나 만일 그의 노래가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빗면을 타고 다시 떨어질 바위를 열심히 굴리는 우리네들에게 삶의 희열과 낭만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노래도 진리가 될 수 있다. 물론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속에서 사람과 부대끼며 사람을 위한 노래를 사람의 목소리로 담아낸 위대한 보컬리스트만이 가능하다. 그의 이름은 김광석이다.
이경준/ ‘100비트’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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