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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델피르와 친구들] 혜안을 깨우는 거장들의 살내음

등록 2011-01-20 18:07수정 2011-01-20 19:10

델피르와 거장들이 함께한 스크랩 사진들.
델피르와 거장들이 함께한 스크랩 사진들.
‘델피르의 친구들’전 가보니

로베르 델피르는 사진작가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20세기 현대사진의 대표적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는 누구인가? 사진기획자이자 아트디렉터이고 출판 편집자이자 작가들의 진정한 이해자였다. 델피르는 수많은 사진 작가들의 작품집을 엮었다. 그리고 이들의 전시를 주선했고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큐레이터이고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가 선택하고 보여준 이들은 20세기 사진계의 거장이 되었다. 그만큼 눈이 밝은 이였다. 비평가란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이고 읽을 수 없는 것을 읽게 해주는 이다. 그들은 일반인들과는 좀 다른 눈을 소유한 이들이다.

중국에서 한자를 발명했다고 전해지는 창힐의 초상화를 보면 눈이 네 개 달려 있다. 괴물이 아니고서야 어찌 눈이 네 개나 달렸을까? 생각해 보면 문자를 독해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또다른 눈을 소유한 것이나 진배없다.

그는 한 쌍의 눈을 더 가진 존재다. 비평가나 큐레이터 역시 그런 눈을 갈망한다. 아니 그런 눈이 있어야 하는 이들이다. 사진이란 매체가 단지 외부세계의 기계적 재현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기호이고 문자이며 놀라운 이미지들로 가득한 흥미로운 존재임을 인식시키고 그런 작업들을 선별해서 묶고 이를 책자와 전시 형태로 엮어낸 이가 델피르다. 그의 엄격하고 까다로우며 날카로운 눈에 의해 사진은 걸러지고 솎아내졌다. 그렇게 해서 걸작과 거장의 목록이 추려졌다. 물론 그것은 분명 델피르의 개인적인 시각이자 안목이지만 그의 눈에 의해 호명된 ‘특별히 재능 있는’ 이들의 명단은 지금 세계 사진사의 행간을 채우고 있다. 그 눈이 무섭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델피르의 놀라운 안목에 의해 선택된, 지금은 고전이 된 이들의 사진이 지금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되고 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요세프 코우델카, 윌리엄 클라인, 세바스치앙 살가두, 로베르 두아노, 헬무트 뉴턴, 사라 문 등 거장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 작품들을 지금 전시장에서 행복하게 조우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지속적인 관심과 이해 속에서 격려하고 비평하던 델피르와 그 친구들의 살내음이 전시장에 자욱하다.

박영택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박영택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이 전시는 세계사진사를 고스란히 압축해 놓았고 신화가 된 작품들만을 선별해놓았다. 좋은 작가는 좋은 평론가, 큐레이터를 만나 함께 가야 가능하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새삼 작가와 비평가, 큐레이터와 출판 기획자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모든 것을 떠나 현대사진의 핵심적 작가와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둔 그 의미만으로도 소중하고 그래서 꼭 보아야 할 전시일 것이다. 혹한의 추위 속에도 전시장에는 델피르의 밝은 눈을 쫓는 이들의 눈길이 마냥 분주하다.

박영택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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