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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록이 클래식과 만나듯이…늘 실험중이죠

등록 2011-02-07 19:33수정 2011-02-08 11:34

성시완
성시완
디제이·음반사·공연기획 통해
1982년부터 아트록 소개 전념
4월 라테 에 미엘레 공연 추진
성당 연주 성사 위해 개종까지
여기서도 캐럴, 저기서도 캐럴이 들려오던 1982년 크리스마스이브 밤 1시. 문화방송 라디오 <음악이 흐르는 밤에>의 디제이 성시완(사진)은 이탈리아 아트록 밴드 라테 에 미엘레의 엘피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유다의 배신부터 예수의 부활까지를 그려낸 록 오페라 대작 <마태수난극>. 그는 40분에 이르는 앨범 전곡을 내리 틀었다. 국내 최초로 라테 에 미엘레의 곡이 소개되는 순간이었다.

아트록 전도 30년 성시완 대표

어릴 적부터 펜팔을 통해 유럽,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의 음악에 눈을 뜬 성시완은 1981년 제1회 전국 대학생 디제이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뒤 이듬해 방송계에 발을 들였다. 국내에 생소하던 아트록을 주로 소개해 ‘아트록 전도사’로 불렸다. 프로그레시브록으로도 불리는 아트록은 클래식의 요소를 차용한 록 음악의 한 갈래로, 1970년대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크게 번성했다.

아트록을 방송으로만 소개하는 게 성에 안 찼던 그는 1989년 시완레코드라는 음반사를 차리고 음반을 수입하거나 라이선스 발매를 했다. 1972년 발매 당시 이탈리아에서 1600장밖에 안 팔렸던 <마태수난극>은 한국에서만 2만장 넘게 팔렸다.

1991년 이탈리아에 간 성시완은 산레모에서 라테 에 미엘레 멤버들을 만났다. 라테 에 미엘레는 1980년에 이미 해체한 상태였다. “요즘 한국에서 당신들 음반이 엄청 팔린다”고 전하자 멤버들은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재결성 공연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성시완은 라테 에 미엘레 등 여러 아트록 밴드의 내한공연을 추진했다. 하지만 1992년 뉴키즈온더블록 내한공연에서 관객 한 명이 압사하고 수십 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모든 계획을 접어야 했다.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시완레코드는 매달 20여개 타이틀을 꾸준히 발매했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 원가도 못 건지기가 부지기수였다. 직원 월급도 제때 못 주고 빚만 불어갔다. 자식처럼 아끼던 희귀 음반을 인터넷 장터에 내다 팔며 눈물을 삼켰다.


2006년 엘지아트센터에서 아트록 공연을 하고 싶다며 조언을 청해왔다. 이탈리아 밴드 피에프엠(PFM) 공연을 성사시키는 데 도움을 준 그는 내친김에 2007년 뉴트롤스, 2008년 라테 에 미엘레 공연까지 도왔다. 라테 에 미엘레는 내한공연을 위해 재결성을 했다. 1991년에 한 약속을 17년 만에 지킨 셈이다. 공연은 매진이었다.

가족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빚을 청산한 그는 직접 아트록 내한공연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9년 뉴트롤스에 이어 지난해 오산나·르네상스 공연을 잇따라 진행했다. 하지만 손익계산서를 본 그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극장 규모 공연을 해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라테 에 미엘레를 떠올렸다. 2008년 내한공연을 하고 돌아가는 그들에게 “다음에는 원곡에서처럼 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공연을 꼭 성사시키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여러 성당을 알아보다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최양업홀을 찾아냈다. 보통 본당 뒤쪽에 있기 마련인 파이프 오르간이 앞쪽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객석도 딱딱한 나무의자가 아니라 폭신한 의자였다.

문제는 성당 쪽에서 대중음악 공연을 허락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그는 백남용 신부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저는 이 공연을 위해 천주교로 개종까지 했습니다.’ 진심이었다. 공연일도 부활절 즈음인 4월28일로 정했다. “공연해도 좋다”는 답변을 얻은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라테 에 미엘레가 파이프 오르간 공연을 하는 건 세계 최초다.

1월1일 시완레코드 누리집(www.siwans.com)에서 티켓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100장이 팔렸다. 하지만 이후 정체 중이다. 그는 “462석 규모 공연장을 어디까지 채워야 최소한의 경비를 건질 수 있는지 일종의 실험을 해보는 중”이라며 “홍보 없이 얼마나 팔리는지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가 나가면 홍보를 안 하는 원칙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말했다.

“이제부터는 홍보가 좀 돼서 성공사례를 만들어야 다음 공연을 또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뭐, 실패해도 계속할 것 같긴 하지만요. 허허허~”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내한하는 ‘라테 에 미엘레’는?

1972년 ‘마태수난극’으로 데뷔…첫 파이프 오르간 공연 기대


라테 에 미엘레
라테 에 미엘레
성경에 나오는 말인 ‘젖과 꿀’을 뜻하는 라테 에 미엘레(사진)는 1970년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결성된 아트록 밴드다. 클래식을 전공하던 피아니스트 올리비에로 라카니나, 클래식 기타리스트 마르첼로 잔카를로 델라카사, 드러머 알피오 비탄차 등 3인조로 출발했다. 당시 멤버 모두가 10대였는데, 가장 어린 드러머는 16살에 불과했다.

1972년 바흐의 <마태수난곡>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앨범 <마태수난극>으로 데뷔했다. 마태복음서에서 유다의 배신부터 예수의 부활까지를 발췌해 모두 12곡으로 이뤄진 록 오페라를 만들어냈다. 이 음반은 이들의 최고작이자 아트록의 명반으로 꼽힌다. 2집 <빠삐용>(1973)을 발표한 뒤, 해산과 재결합을 거듭하며 3집 <독수리와 다람쥐>(1976)와 몇 장의 싱글을 남기고는 1980년 해체했다.

2008년 한국 공연을 계기로 원년 멤버에 중기 멤버 마시모 고리까지 모여 4인조로 재결성했다. 2009년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담은 새 앨범 <마르코 폴로-꿈과 여행>을 발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4월28일 저녁 8시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최양업홀에서 세계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 공연을 할 예정이다. (02)322-6697. www.siwans.com

서정민 기자, 사진 시완레코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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