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대안적 전시공간
1년 사용기한 마치며 고별전
1년 사용기한 마치며 고별전
문도 없고, 쓰레기가 흩어진 전시장 주위엔 칼칼한 한기가 맴돌았다. 그 안의 해진 벽과 바닥에 20~30대 작가들이 고심해 만든 설치 작품과 그림, 동영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이태원 좁은 골목길에 자리잡은 ‘공간 해밀톤’에서는 스산한 고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08년 10월 건물 주인의 배려로 1년 기한으로 공간을 열 당시 망치를 들고 전시장을 만들었던 작가 9명이 주인공. ‘젊음이 있다면’이란 제목이 붙은 이 기획전은 3월 리모델링될 건물을 비워주기에 앞서 그들이 지닌 고민들을 거칠게 날것으로 풀어내보는 작품 마당이다.
1층에 놓인 사진대학원생 박치영의 작품은 사진집 꽂힌 책꽂이나 물감 짜낸 튜브의 쓸쓸한 풍경을 찍은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시장에 가위눌린 미술판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작가들의 현주소를 암시하는 듯하다. 1, 2층 사이 골방엔 사람의 팔, 다리, 머리가 마구 잘려지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삼키는 잔혹극 같은 풍경 등을 담은 심래정씨의 낙서 애니메이션이 펼쳐진다. 2층에는 황막한 굴뚝 풍경이나 위장군복 같은 대지 표면의 풍경을 묘사한 김희연씨의 그림과 예비작가의 불안한 마음속을 벽면에 분필 낙서 등으로 채운 김상인씨의 <아름다운 벽>(사진)이 희미하게 빛났다. 벽면 메모엔 “…불분명한 간절함”이란 글귀도 쓰여져 있었다.
2000년대 초까지 젊은 작가들 둥지였던 대안공간들이 이제는 모두 퇴락해버린 상황에서 해밀톤은 1년여간 시각예술, 건축, 디자인, 음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실험 전시 등으로 유일한 오아시스 구실을 해왔다. 폐관을 아쉬워하는 속내가 거친 전시장 곳곳에 붓질과 드로잉으로 묻어나온 셈이다. 공간을 꾸렸던 독립기획자 양지윤씨는 “이번 고별전은 현재 청년작가들의 방황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또다른 도약을 낳는 씨앗이 될 것”이라고 했다. 13일까지. blog.naver.com/lab201, (031)420-1863.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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