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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장인의 눈에 포착된 나무의 심연

등록 2011-02-17 19:22

 <철학자의 나무>
<철학자의 나무>
마이클 케나 사진전
흑백 필름 특유의 질감 돋보여
벽에 내걸린 사진의 크기는 이른바 ‘에잇 바이 텐’. 8×10인치(201×252㎜)의 작은 흑백 사진이다. 눈을 쫑긋 뜨고 보면, 그 안에 세계 곳곳의 나무와 언덕, 산, 바다가 심연의 깊이로 펼쳐지고 있다. 심연의 깊이란 다름 아닌 흑백 필름 특유의 농도와 질감이다. 흐린 하늘에 아롱거리는 태양의 빛살, 다양한 두께의 구름 무늬들, 갈라진 나뭇가지 선들의 세부 하나하나가 다 명확하게 눈에 잡힌다.

영국의 풍경사진 대가 마이클 케나(58)는 한국과 일본, 중국, 유럽, 미국 등지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의 자태를 찍었다. 애장품 하셀블라드 카메라로 사전에 치밀하게 구도와 농도를 계산하면서 나무들을 포착했다. 장인의 시선과 손길 아래서 나무들은 사색을 낳는 풍경의 주역이 된다. 지난 12일부터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 마련된 그의 근작전 ‘철학자의 나무’(3월20일까지, 02-738-7776)에서는 장인의 눈길로 다듬어낸 나무 사진 50여점이 이미지 홍수에 지친 관객의 눈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일본 홋카이도의 설원과 나무
일본 홋카이도의 설원과 나무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이다. 출품작들은 작가의 시선 속 풍경을 피워올리는 숯불 같은 사진들이다. 부챗살 같은 석양의 빛놀이를 배경으로 선 고목을 담은 표제작 <철학자의 나무>(큰 사진)와 끝없는 자작나무의 행렬을 포착한 이탈리아 시골 풍경에서처럼 케나의 사진들은 꽉 짜인 구도와 프린트의 높은 밀도감이 특징이다. 하늘, 땅과 어우러진 자연 사물의 실제 풍경을 접한 느낌 그대로 사진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작가는 설원이나 바닷가, 언덕의 나무 풍경에서 느껴지는 대기감, 원근감을 촬영·인화단계에서 여러 단계의 흑백 톤(계조)으로 정교하게 표현하면서 소름 돋을 만큼 명료한 재현의 풍경을 완성한다. 장시간 노출 촬영에 인화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하는 장인적 집요함이 이를 뒷받침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언덕, 바다는 바로크적이거나 모던한 전원 풍경으로, 일본 홋카이도의 설원과 나무(작은 사진)는 전통 우키요에 판화의 풍경으로, 중국 황산의 기암괴석은 전형적인 중국 관념산수의 풍경으로 비치는 것은 이런 집요한 아날로그적 작업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케나는 인간사를 지켜본 경험의 파수꾼으로서, 나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거대한 감사에 대해 작은 징표로 나무 연작들을 찍었다고 말한다.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600여차례 이상 전시회를 열어온 케나는 2007년 공단 건설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던 강원도 삼척 월촌리 솔섬의 사진 연작(이번 전시에도 한점이 나왔다)을 처음 소개해 국내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작가는 개막식과 관객 사인회에 참석한 뒤 현재 울산, 포항 등지에서 사진 기행에 몰두하고 있는데, 내년 하반기 한국 작업들만 모아 다시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날로그 사진의 울림을 주는 전시는 하나 더 있다. 케나의 전시장 부근인 서울 소격동 트렁크갤러리에 차려진 일본의 광고사진가 스가와라 이치고의 한국 전시(3월2일까지, 02-3210-1233)다. 19세기 사진 발명 초창기의 백금 유리 프린트 수작업을 재현해 흑백 톤의 미묘한 결을 극도로 되살린 ‘빛으로 잠긴 숲’과 꽃 등의 정물 풍경이 디지털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눈을 깨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공근혜 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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