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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에릭 클랩튼의 열 손가락 블루스, 깊어만 지네

등록 2011-02-21 18:18수정 2011-02-22 14:10

에릭 클랩턴
에릭 클랩턴
앞선 공연과 달리 '나홀로' 기타
‘레일라’ ‘원더풀 투나잇’…
기타와 혼연일체 2시간 훌쩍
[에릭 클랩턴 세번째 내한공연]

20일 저녁 정확히 7시가 되자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불이 꺼졌다. 10~20분 늦어지는 게 다반사인 팝스타 내한공연이 정시에 시작하는 건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파란색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에릭 클랩턴(66)이 무대에 올랐다. 가르마를 곱게 빗어넘긴 은발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얼굴이 대형 화면에 비쳤다.

그의 손가락들이 하늘색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를 쓰다듬자 첫 곡 ‘키 투 더 하이웨이’가 흘러나왔다. 블루스의 제왕 비비 킹과 협연한 적도 있는 블루스 명곡으로, 이날 공연의 방향을 알려주는 ‘키’처럼 들렸다. 이어지는 곡들에서 기타 목과 몸통이 연결되는 부위의 고음 지판 위를 노니는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솔로 연주가 빛을 발했다. 지판을 누른 손가락이 위아래로 춤추며 비브라토(떨림) 음을 토해내자 객석 곳곳에서 외마디 탄성이 터졌다. 밥 말리 곡을 커버한 ‘아이 샷 더 셰리프’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레게 리듬으로 1부를 마쳤다.

2부는 어쿠스틱 기타가 열었다. 기타 본연의 깊은 울림은 물론 줄을 타고 미끌어지는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소음마저 음악이 됐다. 울림통이 있는 깁슨 홀로보디 기타로 바꿔 든 그는 최신 앨범 <클랩턴> 수록곡 ‘리버 런스 딥’, ‘로킹 체어’ 등을 연주하며 블루스의 깊은 맛을 선사했다. ‘레일라’로 2부를 마무리지은 그는 3부에서 다시 펜더 기타를 들었다. ‘원더풀 투나잇’의 끈끈한 전주가 흐르자 관객들은 박수와 함성을 터뜨렸다. 어느 외국인 한 쌍은 얼싸안고 ‘블루스 춤’을 췄다. 마지막 곡 ‘코카인’에서는 모든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따라불렀다. 달아오른 열기는 앙코르 곡 ‘크로스로드’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렇게 두 시간여가 눈 깜짝할 새 흘렀다.

2007년 두번째 내한공연이 블루스 록 중심이었다면, 이날 공연은 좀더 뿌리로 다가간 블루스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당시 두 명의 기타리스트와 함께 모두 석 대의 기타로 꽉 찬 사운드를 들려줬던 그는 이번에는 혼자서 기타를 잡았다. 대신 ‘좌청룡 우백호’라 해도 손색이 없을 법한 두 명의 키보디스트가 환상적인 솔로 연주로 그의 기타를 뒷받침했다.

2007년과 마찬가지로 그는 “생큐”라는 말만 간간이 내뱉었을 뿐 연주에만 몰두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둘째 아들 김정철이 지난 14일 싱가포르 공연을 관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일부 언론이 갖가지 추측과 정치적 해석을 갖다 붙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에릭 클랩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그리고 우리가 그로부터 진정 원하는 건, 김정철조차 반하게 만든 음악 그 자체다. 정치와 이념마저 뛰어넘는 음악의 위대함을 그는 묵묵히 증명했다.

서정민 기자, 사진 나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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