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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왕의 빛깔’ 대홍…해맑고 담박하구나

등록 2011-02-24 19:45

장인 김정화씨가 전통기법으로 염색한 홍색 치마(위 사진)와 내걸린 홍적색 천들(아래 사진). 그가 재현한 전통 홍색(대홍)은 빛을 반사하지 않고 빨아들이는 은은한 색감이 특징이다.
장인 김정화씨가 전통기법으로 염색한 홍색 치마(위 사진)와 내걸린 홍적색 천들(아래 사진). 그가 재현한 전통 홍색(대홍)은 빛을 반사하지 않고 빨아들이는 은은한 색감이 특징이다.
김정화씨 염색 직물전
명맥 끊긴 전통기법 찾아내
‘꿈의 색’ 20년 고투끝에 뽑아
“옛 부엌 아궁이 속 숯불의 불기운이 전해지는 색, 해가 발그레하게 지고 뜰 때 퍼지는 색, 어릴 적 어머니 등에 업혀 몽롱하게 쳐다보았던 하늘의 색….”

전통염색 장인 김정화(56)씨는 평생 갈망해온 꿈의 색깔을 이렇게 불렀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짚풀생활사박물관 2층 전시장에 가면 그가 말한 색들처럼 미묘한 주홍빛에 물든 무명·비단 천 뭉치들을 볼 수 있다. 장인이 어린 시절부터 오매불망 재현하려 애써왔던 우리 전통 빨간색들. 이른바 홍색, 적색이라고 부르는 이 색깔을 그는 20여년간의 고투 끝에 5년 전 복원해냈다. ‘왕의 색-대홍(大紅)’이라고 이름붙여진 전시는 이런 김씨의 작업 내력과 열매를 보여주는 마당이다.

전시장엔 그가 찾아낸 전통기법으로 물들인 홍색, 적색 천들이 바닥에 펼쳐지거나 펄렁거리며 내걸려 있다. 대개 빨강 하면 진한 핏빛이나 농염한 빛을 발하는 립스틱 색조를 떠올린다. 그러나 장인이 내보인 홍색, 적색 천들은 반들반들 빛을 되비치거나, 우악스럽게 색감으로 압도하지 않는다. 진홍(眞紅), 심홍(深紅), 대홍(大紅) 단계로 색감이 나뉘는 전통 홍색은 해맑고 담박하다. 홍색 최고의 색조로 군왕의 옷 곤룡포에 입혔다는 대홍은 빛을 빨아들여 다른 색조와 대비될수록 더욱 존재감이 드러난다.

“홍색은 홍화꽃잎에서 빼냅니다. 꽃잎을 볏짚 태운 재로 만든 잿물에 넣어 색소를 빼내고 빨래처럼 치대면 홍색물이 나오지요. 그 홍색물에 식초를 섞어 묽게 한 뒤 무명천을 넣어 물들입니다. 이 염색한 무명에서 색들을 게워내고 다시 입히고 게워내고 하는 과정을 되풀이해서 비단에 순색을 염색하는 것을 ‘개오기’라고 합니다. 이런 염색을 40~50차례 해야 색이 안 빠지는 온전한 홍색이 나옵니다. 공정만 32가지 절차를 거치는 건데, 그런 과정을 모두 거쳐 나온 최고의 완성품이 바로 권위의 상징인 대홍인 겁니다.”

홍색 염색천 1필에 홍화 17근이 들어간다. 조선시대 홍화 1근이 쌀 한섬에 맞먹었으니, 홍화 1필은 쌀 17섬, 곧 3400여평 소출과 맞먹는다는 계산이 된다. 양의 기운을 상징하는 홍색이 권력과 부의 색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고고한 홍염의 전통은 20세기 초 조선왕조가 망해 왕실 복식을 염색하던 장인들이 사라지면서 명맥이 끊겼다는 설명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화학염료가 보급되면서, 만들기가 용이한 쪽색을 제외한 다른 색깔들의 전통염색법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한다.

다른 한편에 내걸린 <듣다-산수> <타다-코스모스> 같은 염색 그림들은 은은한 톤이 압권이다. 푸른빛, 노란빛과 어울린 홍색의 색단들이 우주의 폭발이나 서서히 퍼져가는 산불의 실루엣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짐작대로 김씨의 꿈은 어릴 적부터 화가였다. “따뜻한 아궁이 속 숯불과 해가 뜨고 지는 황홀한 풍경의 색감을 꼭 그려보겠다고 다짐했다”는 기억이 1980년대 전통염색 복원을 발심한 바탕이 되었다. 농촌지도사가 되어 마을 촌로들에게 염색에 얽힌 이야기들을 귀동냥하고 <조선왕조실록> <해행총재> 등의 옛 자료를 뒤진 것이 10여년, 본격적인 염색 공정을 실험해온 것이 10여년. 결국 2006년 꿈꿨던 적색, 홍색을 재현하고서야 그림 작업을 시작했다. 그림을 완성하고서 어릴 적 불을 보며 느낀 환희가 되살아나 전율했다는 작가는 “전통염색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27일까지. (02)743-8787.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짚풀생활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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